002회 — 열차는 목요일마다 떠나고, 벌판은 끝이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간표를 껐다.
블라디보스토크 출발, 매주 목요일.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목요일이면 이번 주도 있었다. 내일모레면 목요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대문 시장 바닥을 쓸어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50년을 그렇게 보냈다.
스무 살에 처음 그 철길을 손가락으로 그었을 때, 나는 반드시 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믿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 그러나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지나고, 예순이 넘었다. 철길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
장흥에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온갖 일을 했다. 행정사 사무실도 차렸다. 그때 고려인들을 만났다. 카레이스키들을 만났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허우적대는 그들의 체류 문제를 직접 다뤘다. 그리고 김이리나를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눈동자를 액정 너머로 만났다.
SNS에서였다. 닉네임 '김이리나러시아'. 투박한 일곱 글자.
그녀와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러시아어와 어눌한 한국어가 섞인 문장들이었다. 그녀는 안산 공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나는 방법을 찾아봤다.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지만 그 길은 너무 좁고 험했다.
결국 그녀는 추방당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어느 날 그녀의 계정이 사라졌다. 닉네임 '김이리나러시아'가 검색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왔다.
신바딤. 어머니의 못다 한 꿈을 안고 이 땅을 다시 밟은 젊은이. 안산 공단 어귀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어머니의 그 깊고 서글픈 눈매를 꼭 빼닮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어머니가 가르쳐줬다고 했다. 추방당한 후에도 아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 후로 신바딤을 다시 보지 못했다. 내 사정도 넉넉지 않았다. 월세방을 전전했다. 그와 더 깊이 동행할 여유가 없었다. 인연은 그렇게 세월에 깎여 희미해졌다.
그러나 잊은 적은 없다.
오늘 밤도 이 낡은 스마트폰을 들고, 금 간 액정으로 시베리아 열차 시간표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그것이다. 목요일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는 그 열차 안에 카레이스키들의 영혼이 아직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짐짝처럼 실려갔던 그들의 울음소리가 그 철길 위에 아직 스며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쓴다.
모르기 때문에 쓴다. 신바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 김이리나 여사가 카자흐스탄 어느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쓰면 언젠가 닿을 것이다. 활자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 이 낡은 몸이 다하기 전에, 그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빗자루를 내려놓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문장손이 신한촌에 도착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여름이 왔다. 연해주의 여름은 조선의 여름과 달랐다. 낮에는 뜨거웠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했다. 바람이 달랐다. 흙냄새도 달랐다. 그러나 볍씨는 자랐다.
마을 어귀 늙은 사내의 이름은 최서방이었다.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연해주에 온 지 십 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가 문장손에게 땅 한 뙈기를 내줬다. 척박했다. 돌이 많았다. 첫 삽을 들었을 때 쇠 삽날이 돌에 부딪혀 튕겨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문장손은 멈추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일어났다. 돌을 골랐다. 삽으로 땅을 뒤집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 다시 잡혔다. 터진 자리에 굳은살이 생겼다. 두만강을 건너던 발처럼, 손도 그렇게 단단해졌다.
"자네, 쉬지도 않나?"
최서방이 물었다.
"쉬면 생각이 납니다."
"뭐가?"
"고향이요."
최서방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십 년 지나면 여기가 고향 돼. 이 흙이 내 흙이 돼."
문장손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는.
신한촌에는 조선 사람들이 백 명 남짓 살고 있었다.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탐관오리를 피해 온 사람, 빚을 피해 온 사람, 독립의 뜻을 품고 온 사람. 사연은 달랐지만 모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온 기억이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모였다. 모닥불을 피웠다. 조선말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 노래를 불렀다. 함경도 민요였다. 문장손은 노래를 모른 척했다. 그러나 멜로디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사내가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최서방이 문장손을 불렀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데려갔다. 방 안에 남자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낯선 얼굴들이었다. 모두 눈빛이 달랐다. 형형했다. 뭔가를 품고 있는 눈빛이었다.
"자네를 믿을 수 있나?"
최서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문장손은 방 안을 둘러봤다. 대답 대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독립군 군자금이야. 조선에 있는 의병들한테 보내야 해. 일본 놈들 눈을 피해서."
방 안이 조용했다. 모닥불 타는 소리만 들렸다.
문장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그날부터 문장손의 삶은 달라졌다. 낮에는 밭을 일궜다. 볍씨를 심고 물을 댔다. 척박한 연해주 땅을 조선의 논으로 바꿔나갔다. 그러나 밤에는 달랐다. 군자금을 모았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 돈을 맡겼다. 조선으로 흘러들어가는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총이 되고, 총알이 되고, 의병의 밥이 된다는 것은 알았다.
여름이 끝날 무렵, 볍씨가 벼가 됐다.
문장손은 황금빛으로 익은 벼 앞에 서서 오래 바라봤다. 돌투성이 연해주 땅에서, 두만강 건너 가져온 볍씨가 살아남은 것이었다. 최서방이 옆에 와서 섰다.
"믿겠나? 이 땅에서 이런 게 나올 줄."
문장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여기도 살 수 있겠다.
그것이 카레이스키 1대의 뿌리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
※ 다음 003회 — 현재축: 신바딤의 흔적을 찾아 안산으로 향하는 형님 / 과거축: 1937년, 문인수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지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