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04회] 안중근의 그림자, 신한촌에 드리우다 1909년
[카레이스키 유랑사 004회] 안중근의 그림자, 신한촌에 드리우다 1909년 바이라인: 조르바문역사는 영웅 혼자 만들지 않는다.총을 쏜 사람의 이름은 기록에 남는다. 그러나 그 총알이 날아가기까지,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사람들이 밥을 지었고, 돈을 모았고, 길을 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름은 세상이 안다. 그러나 그 뒤에서 군자금을 모으고, 국경을 넘는 밀사에게 은신처를 내주고, 입을 다문 채 살아간 연해주의 조선 사람들, 카레이스키의 이름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그 이름들을 위한 것이다. 1909년 가을이었다.신한촌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그해 여름부터였다. 낯선 얼굴들이 마을을 드나들었다. 조선에서 온 사람, 만주에서 온 사람,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올라온 사람. 그들..
2026. 5. 29.
[카레이스키 유랑사 003회] 신한촌의 봄, 뿌리가 내리다 1903년
[카레이스키 유랑사 003회] 신한촌의 봄, 뿌리가 내리다 1903년 바이라인: 조르바문사람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흙이 척박할수록, 바람이 매서울수록, 뿌리는 더 깊이 파고든다. 연해주의 땅은 조선의 땅과 달랐다. 돌이 많았고, 흙이 거칠었고, 겨울이 길었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그 땅에서도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었다. 뿌리를 내렸다. 조선에서는 빼앗기기만 했던 것들을, 이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그것이 카레이스키의 시작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신한촌이 있었다.1903년 여름, 문장손이 처음 그 마을 어귀에 섰을 때, 그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조선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이후 처음으로 듣는 제 나라..
2026. 5. 29.
002회 — 열차는 목요일마다 떠나고, 벌판은 끝이 없었다
002회 — 열차는 목요일마다 떠나고, 벌판은 끝이 없었다시베리아 횡단열차 시간표를 껐다.블라디보스토크 출발, 매주 목요일.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목요일이면 이번 주도 있었다. 내일모레면 목요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대문 시장 바닥을 쓸어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50년을 그렇게 보냈다.스무 살에 처음 그 철길을 손가락으로 그었을 때, 나는 반드시 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믿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 그러나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지나고, 예순이 넘었다. 철길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장흥에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온갖 일을 했다. 행정사 사무실도 차렸다. 그때 고려인들을 만났다. 카레이스키들을 만났다. 법의..
2026.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