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20회]
창가의 싹, 1994년 겨울
바이라인: 조르바문

싹이 트는 것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어제까지 흙이었던 자리에 오늘 아침 하얀 것이 올라와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은 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그 하얀 것이 올라오기까지 흙 아래에서 씨앗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흙 속에서, 혼자서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순간 밀고 올라오는 것이다.
문드미트리가 안산 고시원 방 창가에 볍씨를 심은 것은 1994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싹이 올라온 것은 그해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아침이었다.
드미트리는 그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가를 보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볍씨를 심은 날부터 그랬다.
눈을 뜨면 먼저 창가를 보았다. 화분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흙만 있었다. 물을 조금 주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보았다. 매일 보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불안했다.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안산의 고시원 방 창가는 카자흐스탄의 논과 달랐다. 흙이 달랐다. 물이 달랐다. 햇살의 양이 달랐다. 이 볍씨가 이 낯선 흙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물을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물을 주었다.
조금씩 주었다. 너무 많이 주면 썩는다고 갈리나 아주머니가 말해주었다. 조금씩, 흙이 마르지 않을 만큼만 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12월 초였다.
안산에 첫추위가 왔다.
찬바람이 골목을 쓸었다. 공장 안도 추워졌다. 드미트리는 두꺼운 작업복을 껴입었다. 카자흐스탄의 겨울보다는 따뜻했다. 그러나 습했다. 카자흐스탄은 건조하게 추웠는데 안산은 습하게 추웠다.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였다.
퇴근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갔다. 방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그리고 창가를 보았다.
드미트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화분에서 무언가가 올라와 있었다.
하얗고 가늘었다. 실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분명히 올라와 있었다. 흙을 뚫고 올라온 것이었다. 두 개였다. 나란히 두 개가 올라와 있었다.
드미트리는 화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분명했다. 싹이었다. 하얗고 가는 싹이었다. 아직 초록도 아니었다. 흙 속에서 이제 막 나온 것이라 아직 하얬다. 그러나 살아있었다. 분명히 살아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싹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무릎 꿇고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연해주에서 처음 볍씨가 싹을 틔웠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 문인수가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에서 볍씨가 싹을 틔웠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기분이 지금 이 안산 고시원 방 창가에서 자신에게도 오고 있었다.
자랐다.
이 낯선 흙에서, 이 작은 화분에서, 이 좁은 창가에서, 카레이스키의 볍씨가 자랐다.
드미트리는 일어섰다.
보자기를 꺼냈다. 놋쇠 숟가락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차가웠다.
그러나 이 숟가락이 이 싹을 보았으면 했다. 이 숟가락이 함경도 단천에서 두만강을 건너고, 연해주를 지나고, 화물칸을 타고, 카자흐스탄 황무지를 살아남고, 이 안산 고시원까지 온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숟가락을 화분 옆에 내려놓았다.
싹과 숟가락이 나란히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고 낡은 숟가락과 하얗고 가는 싹이 안산의 겨울 창가에서 나란히 있었다.
120년의 여정이 이 창가에 모여 있었다.
이튿날 드미트리는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아주머니, 싹이 났어요."
갈리나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다가 멈추었다.
"볍씨요?"
"네. 두 개요. 어젯밤에."
갈리나 아주머니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무언가를 아는 눈빛이었다.
"잘 됐네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세 글자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드미트리는 자리에 앉았다.
된장국을 시켰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뚝배기를 들고 왔다.
"나디아 씨한테는 얘기했어요?"
드미트리는 놋쇠 숟가락을 들다가 멈추었다.
"아직요."
"왜요?"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했다.
"오늘 얘기할 겁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뒤로 돌아가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식당 안을 따뜻하게 채웠다.
그날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골목에서 나디아와 마주쳤다.
나디아가 먼저 보았다.
"드미트리 씨, 얼굴이 달라 보여요."
"싹이 났어요."
나디아가 눈을 크게 떴다.
"볍씨요?"
"네. 어젯밤에요. 두 개."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환해졌다.
"보고 싶어요."
"같이 가요."
두 사람이 나란히 고시원으로 걸었다.
드미트리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디아를 자신의 방에 데려가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 좁고 낡은 방을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시원 건물에 들어섰다.
계단을 올랐다.
방문을 열었다.
불을 켰다.
나디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방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가에 화분 하나. 나디아는 방을 한 번 둘러보고 화분 쪽으로 걸어갔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았다.
드미트리가 어젯밤 했던 것처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나디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까만 머리가 창가 빛을 받아 빛났다. 그 모습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디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할머니가 연해주에서 가져오신 볍씨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자랐대요."
"네."
"그 씨앗에서 받은 씨앗이 저한테도 있어요."
드미트리가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가져왔어요?"
"네. 여기 올 때 챙겨 왔어요."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디아도 볍씨를 가져왔다.
같은 씨앗이었다. 연해주에서 화물칸에 실리던 날 저마다 품에 안고 왔던 그 씨앗이, 카자흐스탄을 거쳐 자신에게 왔고,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나디아에게 왔다.
두 씨앗이 안산에서 만난 것이었다.
나디아가 일어섰다.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말이 필요 없었다.
카레이스키끼리만 아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끼리만 알 수 있는 것이.

그날 밤 두 사람은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된장국이었다.
나디아가 자신의 볍씨 봉지를 가져왔다.
드미트리의 화분 옆에 나디아의 볍씨 봉지를 놓았다.
두 개의 씨앗이 나란히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씨앗과 우즈베키스탄의 씨앗이 안산의 고시원 창가에서 나란히 있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그것을 보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이네요."
드미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디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된장국이 뜨겁게 끓고 있었다.
안산의 겨울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 골목 안 작은 식당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같은 뿌리에서 온 두 사람이.
같은 씨앗을 품고 온 두 사람이.
된장국이 식기 전에 다 먹었다.
뜨거울 때 먹어야 했다.
카레이스키의 것들은 언제나 뜨거울 때 먹어야 했다.
며칠이 지났다.
드미트리는 아침마다 창가를 보았다.
싹이 자라고 있었다.
하얗던 것이 조금씩 초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으로 온 씨앗이 안산의 고시원 창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 했다.
심었다고. 자란다고.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써야 했다.
강나디아라는 여자도 볍씨를 가져왔다고.
같은 씨앗이라고.
그 씨앗이 안산에서 만났다고.
그러나 편지를 쓰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디아에게 말해야 했다.
말로 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골목에서 마주쳤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함께 걸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했다.
어떻게 말할지 생각했다.
한국말로? 러시아어로? 아니면 조선말로?
드미트리는 오래 생각했다.
조선말로 해야 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뿌리에 대해서는 거짓말하지 마라. 그것만큼은 거짓말하지 마라.
그리고 이 말은 뿌리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카레이스키의 뿌리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조선말로 해야 했다.

다음 회에서는 드미트리가 나디아에게 조선말로 마음을 전하는 그 저녁, 그리고 두 사람의 볍씨가 나란히 안산의 창가에서 자라 가는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90년대 고려인 한국 정착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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