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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16회]안산 공단의 첫 번째 새벽, 1992년

by Zorbamoon 2026.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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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16회]
안산 공단의 첫 번째 새벽, 1992년

바이라인: 조르바문

낯선 땅에서의 첫 번째 새벽은 언제나 차갑다.

연해주의 첫 번째 새벽이 그랬다.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새벽이 그랬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첫 번째 새벽도 그랬다. 차갑다는 것은 온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는 얼굴이 없다는 것, 익숙한 소리가 없다는 것,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차갑다. 그러나 카레이스키는 그 차가움을 알았다. 대를 이어 그 차가움을 버텨왔다. 문드미트리도 그것을 알았다. 두만강의 차가운 강물 속을 걸어간 증조할아버지의 피가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박성호가 공항에 나와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알마티 시장 골목에서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서툰 러시아어로 부품을 흥정하던 그 사람이었다. 그 살아있는 온기의 사람이었다.

박성호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왔어요?"

드미트리가 조선말로 대답했다.

"왔습니다."

박성호가 웃었다.

"많이 무서웠죠?"

드미트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많이요."

박성호가 최영호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박성호입니다."

최영호가 어색하게 악수를 했다. 조선말이 드미트리보다 서툴렀다. 박성호가 알아채고 러시아어로 바꾸었다. 최영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공항을 나왔다.

밤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서울의 밤이었다. 불빛이 많았다.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쉬지 않고 달렸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도로였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달랐다. 소리가 있었다. 엔진 소리, 경적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 냄새가 있었다. 매연 냄새, 아스팔트 냄새. 살아있는 도시의 냄새였다.

드미트리는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걸었다.

박성호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서울 시내로 들어갔다. 드미트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딩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간판들이 빛났다. 한글로 쓰인 간판들이었다.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글씨들이 자신의 피 안에 있는 어떤 것과 연결된 글씨라는 것을 알았다.

박성호가 운전하면서 말했다.

"오늘 밤은 제 집에서 자고, 내일 안산으로 가요. 거기 고려인들이 많이 있어요. 공장도 있고, 같은 사람들도 있고."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산이요?"

"경기도에 있는 도시예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에요. 고려인들도 거기 많아요."

외국인 노동자.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멈추었다. 외국인. 자신이 외국인인가. 대한민국에 오면 같은 핏줄로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서 자신은 외국인이었다.

그것을 박성호도 알았는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힘들 거예요. 솔직히 말할게요. 한국 사람들이 고려인을 잘 모르거든요. 같은 핏줄인지도 몰라요. 그냥 러시아에서 온 사람 정도로 봐요."

드미트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온 사람. 120년 동안 조국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사람들이, 조국에 와서 러시아에서 온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김이리나 여사가 겪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드미트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박성호의 그 말에서 이미 예감했다.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던 날도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의 황무지에서 볍씨를 심던 날도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쉽지 않아도 하는 것이.

이튿날 아침 안산으로 갔다.

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안산까지 한 시간이었다. 드미트리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시가 계속되었다. 산이 보였다. 한국의 산이었다. 카자흐스탄의 벌판과 달랐다. 낮고 아담했다. 그러나 푸를 것 같았다.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 않아 나무들이 앙상했지만, 곧 초록이 될 것 같았다.

드미트리는 그 산들을 바라보았다.

저 산 너머 어딘가에 두만강이 있을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건넌 그 강이.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 갈 수 없는 그 강이.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 있었다. 같은 산맥의 어딘가에 있었다.

안산 공단에 도착한 것은 오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소리가 달랐다. 기계 소리였다. 낮고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가 공기 안에 깔려 있었다. 공장들이었다.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자신과 같은 얼굴들이었다. 동양인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어딘가 카자흐스탄의 냄새가 나는 얼굴들이었다. 고려인들이었다.

박성호가 말했다.

"여기 고려인 분들이 일하는 공장이에요. 아는 사장님한테 부탁해뒀어요. 두 분 일자리요."

드미트리와 최영호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기계 소리가 더 컸다. 철 냄새가 났다. 기름 냄새가 났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계 앞에 서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도 있었고 고려인들도 있었다.

한 고려인 여성이 드미트리를 보고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새로 왔어요?"

"네."

"어디서요?"

"카자흐스탄이요."

그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이에요. 여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다 있어요. 다 고려인이에요."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 고려인들이었다. 저마다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했던 그 사람들의 후손들이었다. 카자흐스탄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키르기스스탄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이 안산 공단에서 다시 모인 것이었다.

드미트리는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신한촌이었다.

연해주의 신한촌에서 함경도 사람, 평안도 사람, 황해도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이웃이 되었던 것처럼. 안산 공단에서 카자흐스탄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키르기스스탄 고려인들이 다시 이웃이 되고 있었다.

형태는 달랐다. 그러나 같은 것이었다.

카레이스키는 언제나 그렇게 흩어지고 모였다.

첫 번째 작업 날이었다.

작업복을 받았다. 입었다. 기계 앞에 섰다. 담당자가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고려인을 통해 작업 방법을 설명했다. 드미트리는 그 설명을 들으며 기계를 눈으로 따라갔다. 기계는 달랐지만 원리는 비슷했다. 콜호스에서 트랙터를 만지던 손이었다. 기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손이었다.

"해볼게요."

첫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손이 기계에 익었다. 생각보다 빨리 익었다. 콜호스에서 단련된 손이었다.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은 없었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으로 갔다. 식판을 들었다. 줄을 섰다. 음식이 담겼다. 자리에 앉았다.

밥이었다.

쌀밥이었다. 드미트리는 숟가락을 들기 전에 그 밥을 바라보았다. 흰 쌀밥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의 볍씨에서 시작된 쌀이 연해주에서 황금빛 벼가 되었고, 그 씨앗이 카자흐스탄의 황무지에서도 살아남았고, 할아버지가 그 쌀로 밥을 지어 아버지의 몫을 따로 떠놓았던 그 밥이었다. 지금 눈앞의 이 흰 쌀밥이 그 밥과 같은 밥이라는 것을 드미트리는 알았다.

주머니에서 놋쇠 숟가락을 꺼냈다.

옆에 앉은 최영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들고 왔어?"

"응."

"밥 먹을 거야? 그걸로?"

"응."

최영호가 잠시 드미트리를 바라보다가 말이 없어졌다.

드미트리는 놋쇠 숟가락으로 밥을 떴다. 입에 넣었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대한민국의 안산 공단 식당에서, 120년 동안 두만강을 건너고 연해주를 일구고 카자흐스탄의 황무지를 살아낸 그 여정이 담긴 놋쇠 숟가락으로, 한국의 쌀밥을 먹는 순간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꿈꾸었던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다짐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었다.

작고 낡은 놋쇠 숟가락으로 뜬 따뜻한 밥 한 술이 그것을 이루어주고 있었다.

992년 안산 공단 작업복을 입고 기계 앞에 선 고려인 청년 드미트리 카레이스키 대한민국 정착

 

퇴근 후였다.

박성호가 마련해준 방으로 돌아왔다. 안산의 좁은 골목 안에 있는 방이었다. 고시원이라고 했다. 드미트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방을 보고 알았다. 작았다. 세 평이 될까 말까 한 방이었다. 침대 하나, 작은 책상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드미트리는 그 방 가운데 서서 둘러보았다.

카자흐스탄의 집보다 작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익숙했다. 카자흐스탄에 처음 왔을 때 토굴에서 살았던 것처럼.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보자기를 내려놓았다.

놋쇠 숟가락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그 숟가락이 보였다. 작고 낡았다. 그러나 여기 있었다.

대한민국에 있었다.

드미트리는 책상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 안산의 골목이 보였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이 보였다. 어딘가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된장 냄새였다. 드미트리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눈을 감았다.

어머니 나탈리아가 끓여주던 된장국 냄새였다.

카자흐스탄에서 맡던 그 냄새가 대한민국 안산의 골목에서도 났다.

드미트리는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들어왔다.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 안에 된장 냄새가 섞여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별이 있었다. 서울 근교의 하늘이라 별이 많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 쏟아지던 그 별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외로우면 별 봐. 그러면 여기가 생각날 거야. 여기가 생각나면 힘이 날 거야.

드미트리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일 또 공장에 가야 한다. 모레도 가야 한다.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 이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었다. 박성호가 말했다. 쉽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넌 것처럼. 할아버지가 황무지에 볍씨를 심은 것처럼. 아버지가 소련 체제 안에서 조선말을 지켜낸 것처럼.

자신도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 했다.

드미트리는 창문을 닫았다. 침대에 누웠다. 놋쇠 숟가락을 손에 쥐었다. 차가웠다. 그러나 곧 따뜻해질 것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안산의 첫 번째 밤이 깊어갔다. 카레이스키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1992년 안산 고시원 방 안에서 놋쇠 숟가락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지는 고려인 청년 드미트리

 

다음 회에서는 안산 공단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드미트리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같은 고려인들과 어울리고, 그러나 차가운 시선과 부딪히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카레이스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들어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90년대 고려인 한국 정착 및 안산 공단 생활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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