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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17회] 차가운 시선, 뜨거운 뿌리 1993년 안산

by Zorbamoon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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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17회]
차가운 시선, 뜨거운 뿌리 1993년 안산

바이라인: 조르바문

 

카레이스키 유랑사 017회 차가운 시선 뜨거운 뿌리 1993년 안산 고려인 드미트리"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뿌리 깊은 나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가지가 흔들리고 잎이 흔들린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는다. 뿌리가 땅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드미트리가 안산에서 버틴 것이 그랬다. 흔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흔들렸다. 매일 흔들렸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의 뿌리가, 할아버지의 뿌리가, 아버지의 뿌리가 그를 붙들고 있었다.

 

안산에 온 지 여섯 달이 지났다.

1993년 가을이었다. 드미트리는 조금씩 한국말을 배우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아직 더듬거렸다. 그러나 공장 안에서 필요한 말들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맞습니까. 그 정도면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충분했다.

공장 일은 힘들었다.

 

카자흐스탄 콜호스에서도 힘들게 일했다. 그러나 달랐다. 콜호스에서는 아버지가 있었다. 최영호 아버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지치면 기댈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안산 공장에서는 달랐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기댈 수가 없었다. 그저 기계 앞에 서서 시키는 대로 했다.

 

퇴근하면 고시원 방으로 돌아왔다.

세 평짜리 방이었다. 밥을 먹고 씻고 누웠다. 그것이 하루였다. 처음 몇 달은 그 반복이 견딜 만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신기했다. 그러나 여섯 달이 지나자 달라졌다. 신기함이 사라지고 외로움이 들어왔다.

외로움은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밤에 방에 누우면 카자흐스탄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된장국 냄새가 생각났다. 마을 모닥불 앞에서 함경도 민요를 부르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 생각들이 천장에서 내려와 가슴을 눌렀다.

드미트리는 그럴 때마다 놋쇠 숟가락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차가웠다. 그러나 손 안에서 체온을 머금으며 따뜻해졌다. 그 따뜻해지는 과정이 마음을 잡아주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의 차가운 강물 속에서도 이것을 쥐었을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화물칸의 어둠 속에서도 이것을 더듬었을 것이었다. 자신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국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한국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단어 하나가 귀에 꽂혔다.

소련 놈들.

그 말이었다.

 

한국 직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소련 놈들이 왜 여기 와서 일자리를 가져가냐고. 우리 일자리인데. 또 다른 직원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드미트리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가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소련 놈들. 자신은 소련 사람이 아니었다. 소련에서 태어났지만 소련 사람이 아니었다. 카레이스키였다. 조선의 핏줄이었다. 120년 동안 이 땅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한국말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 복잡한 것을 설명할 말이 없었다. 러시아어로 말하면 더 오해를 살 것이었다. 드미트리는 그냥 밥을 먹었다. 씹었다. 삼켰다. 맛이 없었다. 그러나 먹었다.

그것이 버티는 방식이었다.

 

최영호가 옆에 앉아 낮게 말했다.

"들었어?"

"응."

"화나지 않아?"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했다.

"화나."

"그런데?"

"화내봤자 뭐가 달라지나."

최영호가 밥을 먹으며 말했다.

"맞아. 달라지지 않아. 그냥 버티는 거야."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티는 것.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두만강을 건너면서도 버텼다. 화물칸에서도 버텼다. 황무지에서도 버텼다. 그 버팀이 120년을 이어왔다. 안산 공단의 점심 식당에서 소련 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버텨야 했다.

밥을 다 먹었다.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걸으면서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놋쇠 숟가락이 손에 잡혔다. 차가웠다. 단단했다.

버틸 수 있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공장 옆 골목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고려인 아주머니가 하는 식당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는 아주머니였다. 이름은 갈리나였다. 오십이 넘은 나이였다. 둥글고 넉넉한 얼굴이었다.

그 식당에 된장국이 있었다.

 

드미트리가 처음 그 식당에 들어간 것은 최영호가 끌고 가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냄새가 났다. 된장 냄새였다. 드미트리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어머니 냄새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어머니 나탈리아가 끓여주던 그 된장국 냄새였다. 같은 냄새였다. 이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주머니의 손에서 나온 된장국이 카자흐스탄 어머니의 된장국과 같은 냄새였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드미트리를 보았다.

"왜 거기 서 있어요? 들어와요."

러시아어였다.

 

드미트리가 들어가 앉았다. 된장국을 시켰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뚝배기를 들고 왔다. 뜨겁게 끓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뚝배기를 들여다보았다. 된장국이었다. 두부가 들어있었다. 파가 들어있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놋쇠 숟가락이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그 숟가락을 보았다.

"그 숟가락 오래됐네요."

"네. 증조할아버지 것입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증조할아버지요?"

"함경도에서 두만강 건너실 때 가져오신 거요."

 

갈리나 아주머니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도 두만강 건너셨어요. 연해주로."

드미트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하셨고요?"

"아니요.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이에요."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뿌리였다. 다른 땅으로 흩어졌지만 같은 뿌리였다. 이 안산 공단에 모인 고려인들이 모두 그랬다. 저마다 다른 중앙아시아 땅에서 왔지만, 그 뿌리는 하나였다. 두만강을 건넌 그 뿌리였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말했다.

"여기서 힘들죠?"

"네."

"소련 놈 소리도 들었죠?"

드미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어요. 처음에. 그런데 있잖아요."

갈리나 아주머니가 드미트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요.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예요.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들으며 된장국을 한 술 떴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속을 데웠다. 외로움이 조금 녹는 것 같았다. 차가운 것들이 조금씩 녹는 것 같았다.

놋쇠 숟가락이 손안에서 따뜻했다.

 

"1993년 안산 고려인 식당에서 된장국 앞에 앉은 드미트리 손에 놋쇠 숟가락 카레이스키 역사"

 

겨울이 깊어갈수록 갈리나 아주머니의 식당이 드미트리의 집이 되었다.

퇴근하면 갔다. 된장국을 먹었다. 갈리나 아주머니와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이야기,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 처음 된장을 담그던 이야기. 드미트리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밥을 먹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물었다.

"고향에 연락은 해요?"

"가끔 편지 써요."

"전화는요?"

"비싸서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뭐하세요?"

"논 보고 계세요. 볍씨 심으시고."

"어머니는요?"

"계세요. 건강하시고요."

아주머니가 웃었다.

"보고 싶죠?"

드미트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 말이 너무 작았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등을 두드리던 그 감촉이 보고 싶었다. 어머니의 된장국 냄새가 보고 싶었다. 카자흐스탄의 벌판이 보고 싶었다. 별이 쏟아지던 그 밤하늘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무너지면 일어서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말 안 해도 알아요. 나도 그랬거든요."

드미트리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쯤 괜찮아집니까?"

아주머니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에요. 익숙해지는 거예요. 보고 싶은 마음은 안 없어져요. 그냥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들으며 된장국을 마저 먹었다.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사는 법. 그것이 카레이스키가 120년 동안 해온 것이었다. 두만강 너머 조선을 그리워하면서도 연해주에서 살았다. 연해주를 그리워하면서도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다. 카자흐스탄을 그리워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움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봄이 왔다.

안산에도 봄이 왔다. 공장 담벼락 아래 민들레가 피었다. 노란 민들레였다. 드미트리는 출근하다가 그 민들레를 보고 멈추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봄이 되면 민들레가 피었다. 같은 민들레였다. 대한민국에도 카자흐스탄에도 같은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를 보며 생각했다.

씨앗은 어디서든 자란다. 증조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는 그 말이었다. 아버지가 전해준 그 말이었다. 민들레가 그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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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드미트리는 편지를 썼다.

카자흐스탄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러시아어로 썼다. 손이 느렸다. 쓰다가 멈추었다. 다시 썼다.

아버지, 저 잘 있습니다.

안산이라는 곳에서 공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버티고 있습니다. 오늘 공장 담벼락 아래서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보던 것과 같은 민들레였습니다. 씨앗은 어디서든 자란다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놋쇠 숟가락은 매일 들고 다닙니다.

별은 여기서도 보입니다. 카자흐스탄만큼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외로우면 별을 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드미트리 올림.

 

편지를 접었다.

봉투에 넣었다. 카자흐스탄 주소를 썼다. 내일 우체국에 가져가야 했다.

드미트리는 방 불을 껐다.

 

어둠 속에 누웠다. 창밖으로 안산의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있었다. 오늘도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별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내일 또 공장에 가야 했다. 모레도 가야 했다. 봄이 왔으니 좀 더 버틸 수 있었다. 민들레가 피었으니 좀 더 버틸 수 있었다.

씨앗은 어디서든 자랐다.

자신도 그랬다. 이 낯선 대한민국 땅에서, 안산의 좁은 골목에서, 세 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드미트리도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카레이스키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남았다.

"1993년 봄 안산 공장 담벼락 아래 핀 노란 민들레 바라보는 고려인 청년 드미트리 카레이스키"

 

다음 회에서는 안산에 정착해 가던 드미트리에게 찾아온 뜻밖의 인연을 따라갑니다. 고려인 마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5대 문하나의 어머니가 될 여인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90년대 고려인 한국 정착 및 안산 공단 생활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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