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21회] 조선말로 말하다, 1995년 봄
바이라인: 조르바문

말에는 온도가 있다.
러시아어는 차갑고 정확하다.
한국말은 낯설고 서툴다.
그러나 조선말은 다르다.
집 안에서 쓰는 말이다.
아버지가 밤마다 들려주던 이야기의 말이다.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던 그 말이다.
할머니가 연해주를 그리워하며 중얼거리던 그 말이다.
조선말로 하는 말은 뿌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드미트리는 나디아에게 조선말로 말하기로 했다.
이 말만큼은 조선말로 해야 했다.
1995년 봄이었다.
안산에 온 지 세 해가 지났다.
창가의 화분에서 싹이 트고, 그 싹이 초록이 되고, 겨울을 나고, 봄이 다시 왔다.
드미트리의 볍씨와 나디아의 볍씨가 나란히 창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두 화분이었다.
드미트리가 자신의 볍씨를 심은 화분 옆에 나디아의 볍씨 봉지를 심어주었다.
두 씨앗이 같은 창가에서 같은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드미트리는 생각했다.
이것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이 두 화분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공장이 쉬는 날이었다.
드미트리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있었다.
초록빛이었다.
안산의 봄 햇살이 창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물을 주었다.
드미트리의 화분에 주었다.
나디아의 화분에도 주었다.
그리고 옷을 챙겨 입었다.
나디아를 만나러 가야 했다.
오늘 말해야 했다.
더 미루면 안 됐다.
겨울 내내 미뤘다.
봄이 왔으니 이제 말해야 했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말을 꺼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으로 갔다.
나디아는 거기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면 늘 거기서 밥을 먹었다.
드미트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디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나디아가 말했다.
"왔어요?"
"네."
드미트리가 맞은편에 앉았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된장국을 들고 왔다.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드미트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그 뒷모습에서 웃음이 보였다.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된장국이 뜨거웠다.
숟가락 소리만 들렸다.
나디아가 먼저 말했다.
"화분은 잘 있어요?"
"네. 오늘 물 주고 왔어요."
"나디아 것도요?"
"네. 같이 줬어요."
나디아가 웃었다.
그 웃음이 드미트리의 가슴 안에서 무언가를 흔들었다.
드미트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드미트리가 말했다.
조선말로.
"나디아 씨."
나디아가 눈을 마주쳤다.
"우리 볍씨가 같이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나디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듣고 있었다.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이 품에 안고 온 씨앗이지 않습니까."
"네."
"그 씨앗이 연해주에서 살아남았고, 카자흐스탄에서 살아남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아남았고, 여기 안산까지 왔지 않습니까."
"네."
드미트리가 잠시 멈추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같이 살아남으면 어떻겠습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다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디아는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디아가 말했다.
역시 조선말로.
"볍씨처럼요?"
"네."
"같이 심어서, 같이 자라고, 같이 뿌리를 내리는 거요?"
"네."
나디아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산의 봄 골목이었다.
민들레가 피어 있는 그 골목이었다.
처음 만난 그 골목이었다.
나디아가 다시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두 글자였다.
그러나 드미트리의 가슴 안에서 그 두 글자가 오래 울렸다.
문장손이 두만강 강물 속으로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처럼.
문인수가 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볍씨 싹을 처음 보던 그 순간처럼.
작지만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된장국을 더 퍼주러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국을 퍼주었다.
그러나 돌아가며 혼자 웃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드미트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 된장국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인연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된장국도 인연이었다.
민들레도 인연이었다.
창가의 볍씨도 인연이었다.
그 모든 것이 모여서 오늘 이 자리가 된 것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왔다.
두 사람이 골목을 걸었다.
나란히 걸었다.
봄 햇살이 골목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민들레가 흔들렸다.
바람이 불었다.
나디아가 말했다.
"할머니한테 편지 써야겠어요."
"우즈베키스탄 할머니요?"
"네. 안산에서 같은 볍씨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요."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버지한테 편지 써야 해요."
"뭐라고 쓸 거예요?"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했다.
"볍씨가 자라고 있다고요."
"그것만요?"
드미트리가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나디아가 웃었다.
"같이 자라고 있다고도 써요."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자라고 있다고 쓰겠습니다."

그날 저녁 드미트리는 방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카자흐스탄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러시아어로 썼다.
아버지.
볍씨가 자라고 있습니다.
창가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강나디아입니다.
그 여자도 볍씨를 가져왔습니다.
연해주에서 화물칸에 실리던 날 할머니가 품에 안고 오신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나디아에게 왔고, 지금 제 창가 화분 옆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두 씨앗이 나란히 자라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나디아에게 말했습니다.
조선말로 했습니다.
같이 살아남으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나디아가 좋다고 했습니다.
별은 여기서도 보입니다.
드미트리 올림.
편지를 접었다.
봉투에 넣었다.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있었다.
안산의 밤 창가에서 두 싹이 나란히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며 품에 안은 씨앗이 여기까지 왔다.
우즈베키스탄의 화물칸에서 할머니가 품에 안은 씨앗이 여기까지 왔다.
두 씨앗이 안산에서 만났다.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카레이스키의 씨앗은 어디서든 자랐다.
그리고 이제 함께 자라고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안산에서 살림을 꾸리기 시작하는 이야기와, 카자흐스탄 아버지 빅토르의 답장이 도착하는 그날을 따라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90년대 고려인 한국 정착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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