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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03회] 신한촌의 봄, 뿌리가 내리다 1903년 [카레이스키 유랑사 003회] 신한촌의 봄, 뿌리가 내리다 1903년 바이라인: 조르바문사람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흙이 척박할수록, 바람이 매서울수록, 뿌리는 더 깊이 파고든다. 연해주의 땅은 조선의 땅과 달랐다. 돌이 많았고, 흙이 거칠었고, 겨울이 길었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그 땅에서도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었다. 뿌리를 내렸다. 조선에서는 빼앗기기만 했던 것들을, 이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그것이 카레이스키의 시작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신한촌이 있었다.1903년 여름, 문장손이 처음 그 마을 어귀에 섰을 때, 그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조선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이후 처음으로 듣는 제 나라.. 2026. 5. 29.
002회 — 열차는 목요일마다 떠나고, 벌판은 끝이 없었다 002회 — 열차는 목요일마다 떠나고, 벌판은 끝이 없었다시베리아 횡단열차 시간표를 껐다.블라디보스토크 출발, 매주 목요일.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목요일이면 이번 주도 있었다. 내일모레면 목요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대문 시장 바닥을 쓸어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50년을 그렇게 보냈다.스무 살에 처음 그 철길을 손가락으로 그었을 때, 나는 반드시 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믿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 그러나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지나고, 예순이 넘었다. 철길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장흥에서 올라왔다. 서울에서 온갖 일을 했다. 행정사 사무실도 차렸다. 그때 고려인들을 만났다. 카레이스키들을 만났다. 법의.. 2026. 5. 28.
[카레이스키 유랑사 001회] 낡은 액정 속의 눈망울, 120년의 유랑을 부르다 [카레이스키 유랑사 001회] 낡은 액정 속의 눈망울, 120년의 유랑을 부르다바이라인: 조르바문'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옥탑방의 두꺼운 철문이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무겁게 닫힌다. 쿵 하는 그 짧고 무거운 소리는 오늘 하루 동안 거대한 빌딩 숲의 사각지대에서 남들이 버린 오물과 묵은 때를 쓸어내며 버텨내야 했던 비정한 노동의 시간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하는 차단막과 같다. 문을 열고 방 한가운데로 발을 내딛자마자, 낮새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졌던 함석지붕의 눅눅하고 더운 열기가 시멘트 벽면에서 배어 나오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뒤섞여 훅 하고 가슴을 친다. 창문 하나 제대로 열어놓지 못해 환기조차 되지 않는 이 세 평 남짓한 방 가득 고인 공기는 숨을 턱 막히게 하지만, 서울의 화려한 빌딩 숲 뒤.. 2026.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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