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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경제

제7화 낡은 노트북, 나의 이름 없는 섬으로 떠나는 배

by 조르바문 2026.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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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트북, 나의 이름 없는 섬으로 떠나는 배

 67세 청소 노동자 조르바 문이 낡은 노트북 하나로 발견한 인생의 진짜 자유. 새벽 빗자루질 끝에 마주하는 옥탑방의 하얀 화면은, 이름 없는 섬으로 떠나는 마지막 항해와 같습니다. 땀 흘린 자만이 아는 라면 한 그릇의 위로와 글쓰기의 사색을 담았습니다.


가장 치열했던 시간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적막

오전 일과를 마치고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릅니다. 한 계단, 한 계단이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겁게 발목을 잡아끕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도심의 먼지를 쓸어내던 빗자루는 이제 창고 한구석에 몸을 기댔지만, 그것을 쥐었던 내 손바닥은 여전히 얼얼한 감각이 남아 있습니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마디마디에 밴 흙먼지 냄새는 오늘 하루도 내 몫의 노동을 정직하게 해냈다는 훈장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지독한 향기이기도 합니다.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텅 빈 방안을 가득 채운 서늘한 적막입니다. 평생을 가족이라는 이름의 배를 젓기 위해 폭풍우 속에서도 노를 놓지 않았던 시간들. 이제 그 배는 모두 각자의 항구로 떠나버리고, 나는 이 옥탑방이라는 작은 섬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내 안의 조르바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양은 냄비에 물을 올립니다.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꽃이 옥탑방의 냉기를 조금씩 밀어냅니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는 이 정적을 깨우는 유일한 음악입니다. 천 원짜리 라면 한 봉지, 그리고 냉장고 구석에 남은 찬밥 한 덩이. 남들이 보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식탁일지 모릅니다. 강남의 번듯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화려한 성찬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겠지요.

하지만 땀 흘린 자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맛이 있습니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을 삼키면, 새벽 작업 내내 얼어붙었던 속이 사르르 풀리며 온몸 구석구석으로 따뜻한 온기가 퍼져나갑니다. 이 옥탑방 평상 위에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가장 자유로운 식사를 합니다. 내가 직접 번 돈으로, 내 손으로 끓여 먹는 이 라면 한 그릇은 내 육신을 지탱하는 가장 거룩한 성찬입니다.

빗자루 대신 마우스를 쥔 조르바의 춤사위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면, 이제 내 영혼을 채울 시간입니다. 방 한구석, 먼지 쌓인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노트북을 엽니다. 윙- 소리를 내며 힘겹게 팬이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주인장, 오늘도 한번 항해를 시작해 볼까?" 하고 말을 건네는 동료의 목소리 같습니다. 이제 빗자루 대신 마우스를 쥘 시간입니다.

요즘 나는 '애드센스'라는 녀석과 지독한 씨름 중입니다. 남들은 젊은 사람들도 통과하기 힘든 '애드고시'라고 부르며 고개를 내젓더군요. 알파벳도 가물가물하고 타자 치는 속도보다 생각의 속도가 열 배는 빠른 예순일곱의 청소 노동자가 구글의 승인을 받겠다고 노트북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무모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정성껏 써 내려갔던 글들이 노트북의 오작동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조르바를 떠올렸습니다.

조르바가 전 재산을 털어 만든 갈대 차단막이 폭삭 내려앉았을 때, 그는 슬퍼하거나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변에서 거친 춤을 추며 소리쳤죠. "모든 게 무너졌으니,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지워진 글은 다시 쓰면 그만입니다. 오히려 다시 쓰는 과정에서 내 문장은 더 투박해지되 진실해집니다. 기계와 싸우는 이 고독한 시간은 실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가장 치열한 성찰의 시간입니다.

이름 없는 섬을 찾아가는 마지막 항해

사람들은 자꾸만 묻습니다. "그 고생을 해서 광고 몇 푼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고 말이죠. 껄껄, 모르는 소리입니다. 애드센스 승인은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거친 바다를 항해하다 잠시 들러 물을 채우는 작은 항구일 뿐입니다. 내가 이 낡은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진짜 이유는 내 안의 '이름 없는 섬'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평생을 남의 눈치를 보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느라 잊고 살았던 '나'라는 섬 말입니다. 자판을 한 자 한 자 누를 때마다 나는 그 섬에 한 걸음씩 다가갑니다. 맞춤법이 틀려 빨간 줄이 그어지고, 사진 하나 올리는 법을 몰라 한 시간을 헤매기도 하지만, 그 과정조차 새롭고 짜릿합니다. 예순일곱에 만난 이 디지털의 바다는 내가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을 때 느꼈던 그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내 손가락 끝에서 문장이 피어날 때, 나는 더 이상 고단한 청소 노동자가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며, 내 이야기를 세상에 외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낡은 노트북 앞은 나만의 무대이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나만의 춤사위입니다.

다시 새벽을 기다리며, 글쓰기로 배를 불리다

이제 7화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어느덧 옥탑방 창밖은 어스름한 노을이 지고, 저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습니다. 저 불빛들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가겠지요. 내일 새벽이면 나 역시 다시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빗자루를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내 등은 예전처럼 굽어 있지 않습니다. 퇴근 후 나를 기다릴 이 낡은 노트북과, 그 안에서 펼쳐질 나만의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라면 한 그릇으로 육체의 허기를 달랬으니, 이제 이 글쓰기로 영혼의 배를 채웠습니다.

언젠가 구글이 내 글을 인정해 주는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승인이 조금 늦어진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이미 매일 글을 쓰며 내 영혼을 살찌우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조르바 문은 거침없이, 새로운 바다를 향해 노를 젓습니다. 항해는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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