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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경제

마지막 부자가 나라를 살렸다 최준 나눔의 향기

by 조르바문 2026.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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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 집안의 마지막 종손 최준은 300년 가문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에 바쳤습니다. 조선 최고의 부자가 선택한 삶의 방향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후손경상북도 경주. 조선 시대부터 무려 300년간 만석꾼 부자 가문으로 이름을 날린 집안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주 최 씨 최부자 집안입니다.

이 집안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있었습니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고, 가난한 선비에게는 공부할 돈을 댔습니다. 부자이되 혼자만 잘 살지 않는 것, 그것이 경주 최부자 집안의 300년 철학이었습니다. 최준은 바로 그 가문의 마지막 종손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든든한 뒷배

지도 보며 독립자금 결의하는 모습의 최준 선생님]

1919년 3·1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절, 최준은 결심했습니다. 가문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붓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에 거액의 독립자금을 꾸준히 보냈습니다. 김구 선생과도 깊은 신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자금을 전달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최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립운동 진영에서 최준의 존재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금이 떨어질 때마다 "경주에 최준이 있다"는 사실이 독립군들에게 버팀목이 되었으니까요.

 

전 재산을 대학 하나로 바꾸다

광복 이후 최준이 선택한 길은 교육이었습니다. 300년 가문이 일군 전 재산을 털어 대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는 데 헌납했습니다.

거대한 토지, 수백 년간 쌓아온 재물. 그 모든 것이 강의실이 되고, 도서관이 되고, 젊은이들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재산을 다 내놓은 뒤 최준의 말년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300년 동안 이 땅에서 받은 것을 돌려줬을 뿐이다."

 

부자의 품격
최부자 집안엔 또 하나의 유명한 가훈이 있습니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마라."
권력과 결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재물이 있어도 권력을 탐하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최준은 그 가르침을 마지막까지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300년 부자 가문의 역사는 최준에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되고 있습니다. 재산은 사라졌지만, 품격은 남았으니까요.

오늘 우리에게 남긴 것

최준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어쩔 수 없이'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빼앗긴 것도 아니고, 강요받은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300년 가문의 자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진짜 부자는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쓰느냐로 증명된다는 것을, 최준은 삶 전체로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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