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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경제

제2화 빗자루 끝에 담긴 전문가의 정결함

by 조르바문 202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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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눈이 떠집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입니다. 몸이 먼저 압니다. 일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옥탑방 천장을 잠시 바라봅니다.

바깥은 아직 깜깜합니다. 서울의 수천만 사람들이 아직 꿈속을 헤매는 시간입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세수를 합니다. 작업복을 입습니다.

낡았지만 깨끗합니다.

이 옷을 입는 순간 나는 달라집니다.

새벽 4시, 빗자루를 잡다

청계천 도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빗자루를 잡습니다.

예순일곱의 손입니다.

거칩니다. 투박합니다. 손마디마다 세월이 새겨져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부드러움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빗자루를 잡는 순간만큼은.

이 손에 군기가 바짝 섭니다.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대충이 없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빗자루질 한 번 한 번에 내 모든 것을 담습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쓰레기를 치운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이 도시의 얼굴을 닦아냅니다.

새벽 청계천 도로는 하루가 끝난 도시의 민낯입니다. 어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지쳐서 걸었던 그 길 위에 하루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쓸어냅니다.

어제를 지우고 오늘의 길을 새로 냅니다.

아침 출근길 사람들이 깨끗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아이들 등굣길이 맑고 환할 수 있도록. 이 도시가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내 빗자루가 그 일을 합니다.

잡념이 쓸려나가는 시간

빗자루질을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머릿속이 맑아집니다.

어제 있었던 속상한 일. 걱정되는 것들. 아이들 생각. 옥탑방 월세. 이런저런 복잡한 것들이 빗자루질과 함께 쓸려나갑니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빗자루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소리입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준비합니다. 어제의 무게를 내려놓습니다. 새벽어둠 속에서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손마디가 시려올 때

겨울 새벽은 혹독합니다.

청계천 바람이 파고듭니다. 장갑을 껴도 손끝이 얼얼합니다. 거칠어진 손마디가 시려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힘차게 빗자루를 밉니다.

이 시려움이 내 노동의 정직함을 확인해 주기 때문입니다.

요행이 아닙니다. 눈속임이 아닙니다. 오직 내 몸을 정직하게 써서 만들어낸 하루입니다.

차가운 손마디가 오히려 나를 뜨겁게 만듭니다.

첫 햇살, 나의 훈장

어느새 동쪽 하늘이 붉어집니다.

깨끗해진 길 위로 첫 햇살이 쏟아집니다.

그 빛이 내가 쓸어낸 길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습니다.

반짝입니다.

빛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옵니다. 뿌듯함이라고도 부족하고 자랑스러움이라고도 부족한 그것.

아마도 정직하게 산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감정일 겁니다.

깨끗해진 청계천 길 위로 비치는 첫 햇살.

그게 내 하루의 훈장입니다.

어떤 금메달보다 무겁고 어떤 상패보다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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