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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05회] 아들이 태어나다, 문인수의 첫 울음 1912년

by Zorbamoon 202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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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05회] 아들이 태어나다, 문인수의 첫울음 1912년

 

바이라인: 조르바문

"카레이스키 유랑사 005회 아들이 태어나다 문인수의 첫 울음 1912년"

씨앗은 혼자 살지 않는다.

땅에 뿌려진 씨앗은 싹을 틔우고, 그 싹은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에서 다시 씨앗이 맺힌다.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땅에 볍씨를 심던 날, 그는 쌀만 심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다음을 심은 것이었다. 자신이 다하고 나서도 이어질 무언가를 심은 것이었다. 그것이 아들이었다. 그것이 카레이스키 2대의 시작이었다.

 

1911년 봄이었다.

신한촌에 새 식구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그해 봄 장터에서였다. 함경도 성진 출신 처녀가 오빠를 따라 연해주로 건너왔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박순이. 스물한 살. 오빠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막노동을 했고, 순이는 신한촌 아낙네들의 빨래와 바느질을 거들며 살았다.

 

문장손이 처음 그녀를 본 것은 우물가에서였다.

이른 아침이었다. 문장손이 논으로 나가려고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여인이 있었다. 두레박 줄이 길었다. 두 손으로 줄을 잡아당기는데 힘에 부쳐 보였다. 문장손이 멈추었다. 가야 하는지 도와야 하는지 잠시 망설였다. 그 사이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여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았다.

 

문장손이 먼저 눈을 피했다.

그날 이후 문장손은 그 우물가를 지날 때마다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 스스로 알아챘지만 모른 척했다.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것은 가난 때문이기도 했고, 밤마다 군자금을 모으는 일 때문이기도 했다. 혼자가 편했다. 혼자여야 했다.

그러나 박순이는 달랐다.

최서방이 어느 날 저녁 느닷없이 말했다.

"자네, 이제 장가갈 나이도 한참 지났어."

문장손은 대꾸하지 않았다.

"성진 박씨 처녀 알지? 우물가에서 봤다고 들었어."

문장손이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신한촌에 모르는 일이 없군요."

최서방이 웃었다.

"모르는 척하는 것도 다 보여."

혼례는 그해 가을에 치렀다.

 

신한촌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조선식 혼례상을 차렸다. 제대로 된 혼례복은 없었다. 순이는 마을 아낙네들이 모아준 천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문장손은 깨끗하게 빨아 다린 무명 저고리를 입었다. 초라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에게 혼례란 그런 것이었다.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었다.

최서방이 주례를 섰다. 말이 길지 않았다.

"살아라. 그것이 전부다."

 

그 말이 두 사람의 혼례 서약이었다.

밤에 모닥불을 피웠다. 오래간만에 노래가 나왔다. 함경도 민요, 평안도 민요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누군가 손뼉을 쳤다. 아이들이 불 주위를 뛰어다녔다. 문장손은 순이 옆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불을 바라보았다. 그 옆모습이 조선의 어느 마을 처녀와 다르지 않았다. 낯선 연해주 땅 위에서, 조선의 밤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듬해 1912년 늦가을이었다.

"1912년 연해주 신한촌 귀틀집 안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조선 부부 고려인 카레이스키 역사"

순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것은 이른 봄부터였다. 문장손은 그해 논을 더 넓혔다. 하나 더 먹여야 할 입이 생긴다는 것이 힘이 되었다. 더 부지런히 돌을 골랐다. 더 깊이 삽을 박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더 두꺼워졌다. 순이는 배가 부른 와중에도 마을 아낙네들의 바느질을 거들었다. 그 여인도 멈추지 않았다. 문장손은 그런 순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여인도 두만강을 건넌 사람이구나. 몸은 달라도 같은 강을 건넌 사람이구나.

아이가 나온 것은 늦가을 어느 밤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이었다. 연해주의 가을바람은 조선의 가을바람과 달랐다. 더 거칠고 더 차가웠다. 귀틀집 벽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문장손은 방 밖에 서서 기다렸다. 안에서 산파 노릇을 하는 최서방 아내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리고 순이의 소리가 들렸다. 문장손은 그 소리를 들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먹을 쥐었다. 펐다. 다시 쥐었다.

한참이 지났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장손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울음소리가 방 밖까지 울려 퍼졌다. 작고 가늘고 우렁찼다. 연해주의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그 울음소리가, 문장손의 귀에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이번에도 참으려 했다. 참지 못했다.

최서방 아내가 방문을 열었다.

"아들이에요."

문장손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순이가 지쳐서 누워 있었다. 그 품에 작은 것이 안겨 있었다. 문장손은 무릎을 꿇었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작은 주먹이 얼마나 단단해 보이던지.

순이가 힘없이 말했다.

"이름은 지었어요?"

문장손은 한참 그 작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인수(仁壽)."

어질 인(仁), 목숨 수(壽). 어질게 오래 살라는 뜻이었다. 조선이 사라진 땅에서, 연해주의 차가운 밤에 태어난 아이에게 어질게 오래 살라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순이가 눈을 감았다.

문장손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가 귀틀집 안을 가득 채웠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불었다. 연해주의 거친 바람이 집 벽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아이는 울었다. 우렁차게, 거칠게, 멈추지 않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카레이스키 2대의 시작이었다.

문인수는 무럭무럭 자랐다.

연해주의 흙을 먹고 자랐다. 연해주의 바람을 맞으며 자랐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언제나 조선말을 들었다. 문장손은 아이에게 조선말로 말했다. 순이도 조선말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함경도 자장가였다. 연해주 땅에서 함경도 자장가를 들으며 자란 아이. 그것이 문인수였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문장손은 한 가지를 가르쳤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두만강. 그 강 너머에 우리나라가 있어. 조선이야. 지금은 일본 놈들이 빼앗아 갔지만, 언젠가는 돌아간다. 우리가 못 돌아가면 너희가 돌아가는 거야."

아이는 아직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빛은 알았다. 그 눈빛이 무섭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단단했다. 돌처럼 단단했다.

문인수는 그 눈빛을 기억했다. 평생.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문장손의 논은 더 넓어졌다. 신한촌은 더 커졌다. 조선 사람들이 계속 두만강을 건너왔다. 마을이 불어났다. 학교가 생겼다. 조선말로 가르치는 학교였다. 문인수는 그 학교에 다녔다. 조선말로 읽고, 조선말로 썼다. 선생님은 연해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지만 조선말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하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차르가 무너졌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다. 연해주도 흔들렸다. 백군과 적군이 싸웠다. 조선 사람들은 어느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편도 아닌 것이 가장 위험할 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다시 눈을 낮추었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문장손은 그 시절을 버텼다.

낮에는 농사를 지었다. 밤에는 입을 다물었다.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군자금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 독립을 위한 돈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흘렀다. 더 은밀하게,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문인수는 그 모든 것을 보며 자랐다.

 

아버지가 낮에 하는 일을 보았다. 밤에 하는 일도 보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았다. 아버지의 논에서 나온 쌀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 아버지의 손에서 건네진 돈봉투가 누구에게 가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자신도 언젠가 그것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것을 문인수는 자라면서 서서히 알아갔다.

볍씨처럼. 뿌리처럼. 씨앗처럼.

카레이스키는 그렇게 이어졌다.

다음 회에서는 문인수가 청년으로 자라나는 1930년대,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스탈린의 발소리가 연해주 땅에 드리우기 시작하는 시절로 들어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연해주 고려인 정착 및 가족사 관련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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