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레이스키 유랑사 008회] 붉은 땅에 볍씨를 심다, 문인수의 봄 1938년
바이라인: 조르바문
살아있다는 것은 심는다는 것이다.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심은 것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며 품에 안고 온 볍씨가 연해주 돌밭에서 황금빛 벼가 되었듯, 이제 문인수가 그 씨앗을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에 심어야 했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아니, 유언이기 이전에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1938년 봄이 왔다.
카자흐스탄의 봄은 조선의 봄과 달랐다. 연해주의 봄과도 달랐다. 눈이 녹는 것이 아니라 얼었던 땅이 그냥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바람이 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 칼날 같던 바람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하늘 색깔이 달라져 있었다. 그것이 봄이었다.
문인수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보자기를 풀었다. 볍씨 봉지를 꺼냈다. 겨울 내내 품속에 넣고 다닌 볍씨였다. 얼지 않도록 몸으로 데운 볍씨였다. 봉지를 열어 손바닥 위에 쏟았다. 작고 딱딱한 낟알들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살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낟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것이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씨앗이었다. 함경도 단천에서 시작해 두만강을 건너고, 연해주 돌밭에서 황금빛 벼가 되고, 다시 화물칸에 실려 카자흐스탄까지 온 씨앗이었다. 이 작은 낟알 하나에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문인수는 삽을 들었다.
땅이 문제였다.
카자흐스탄의 흙은 벼농사에 맞지 않았다. 연해주처럼 물이 풍부하지 않았다. 논을 만들 물이 없었다. 벼는 물이 있어야 자란다. 물 없이는 심을 수 없었다.
문인수는 마을 사람들과 의논했다.
신한촌에서 함께 온 최서방의 아들 최명준이 있었다. 아버지 최서방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먼저 갔다. 그러나 아들은 살아 있었다. 문인수와 비슷한 나이였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신한촌에서 함께 자랐다.
"물을 끌어와야 해."
최명준이 말했다.
"어디서?"
"저기 저 멀리 보면 낮은 곳이 있어. 봄에 눈 녹은 물이 거기 고여. 거기서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오면 어떨까."
문인수는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멀었다.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해보자."
두 사람이 삽을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말없이 삽을 들고 왔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냥 왔다. 신한촌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다. 화물칸에서 함께 한 달을 버틴 사람들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겨울을 함께 이겨낸 사람들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삽을 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도랑을 팠다.
붉은 흙을 파냈다. 깊게, 길게 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 다시 잡혔다. 연해주에서도 그랬다. 단천에서도 그랬다. 카레이스키의 손은 언제나 그렇게 단단해졌다.
닷새째 되던 날 물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늘게 흘렀다. 실처럼 가는 물줄기가 붉은 도랑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었다. 그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알았다. 이 물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논이 만들어졌다.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 한가운데, 조선 사람들이 맨손으로 만든 논이었다.
문인수는 볍씨를 물에 담갔다.
싹을 틔우기 위해서였다. 며칠을 기다렸다. 볍씨가 싹을 틔울지 알 수 없었다. 겨울 내내 품속에 넣고 다녔지만, 그래도 혹독한 겨울이었다. 죽었을 수도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물에 담긴 볍씨를 들여다보던 문인수가 멈추었다. 하얀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작고 가늘었다. 그러나 분명히 올라오고 있었다. 볍씨에서 하얀 싹이 삐죽 나오고 있었다.
문인수는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두만강을 건너며 품에 안고 온 볍씨가 연해주 돌밭에서 자랐다고 했던 아버지. 씨앗은 어디서든 자란다고 했던 아버지. 카자흐스탄의 붉은 땅에서도 자랄 거라고 했던 아버지.
맞았다.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눈을 감던 날 울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참고 참아두었던 눈물이었다. 그것이 이 작고 가는 하얀 싹 앞에서 터져 나왔다. 누가 볼까 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울었다. 실컷 울었다.
울고 나서 일어섰다.
모판을 만들었다. 싹이 튼 볍씨를 조심스럽게 심었다. 하나하나 손으로 심었다. 연해주에서 아버지가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간격을 맞추었다. 깊이를 맞추었다. 손가락으로 흙을 살짝 덮었다.
심으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자라면 쌀이 된다. 쌀로 밥을 지으면 어머니를 먹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씨앗을 더 많이 받아 더 많이 심을 수 있다. 그다음 해에는 더. 그다음 해에는 더.
그것이 시작이었다.
여름이 왔다.
카자흐스탄의 여름은 뜨거웠다. 중앙아시아의 태양은 조선의 태양과 달랐다. 연해주의 태양과도 달랐다. 그냥 내리쬐었다. 피할 곳이 없었다. 그늘 하나 없는 황무지에서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쬐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했다. 물이 부족했다. 그러나 논에는 물을 대야 했다. 사람보다 논에 물을 더 댔다.
벼는 자랐다.
천천히 자랐다. 연해주에서보다 느렸다. 흙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물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랐다. 조금씩, 조금씩 자랐다.
문인수는 매일 논에 나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왔다. 벼의 상태를 확인했다. 물 높이를 확인했다. 잡초를 뽑았다. 벌레를 잡았다. 말없이 했다. 아버지가 연해주 돌밭에서 말없이 일했던 것처럼.
최명준이 어느 날 물었다.
"이 땅에서 진짜 될 것 같아?"
문인수는 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됐다고 했어."
"연해주는 여기보다 나았잖아."
"아버지는 단천에서 볍씨 가져와서 연해주 돌밭에서 심었어. 그것도 됐어."
최명준이 잠시 말이 없었다.
"자네 아버지, 대단한 양반이었어."
문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씨앗을 믿으셨어. 땅을 믿으셨어. 그게 전부였어."
가을이 되었다.
벼가 익었다.
황금빛이 아니었다. 연해주에서 보던 그 황금빛 벼이삭이 아니었다. 조금 작았다. 조금 여위었다. 카자흐스탄의 거친 땅과 뜨거운 태양과 부족한 물 속에서 자란 벼였다. 그러나 익었다. 분명히 익었다.
문인수는 낫을 들었다.
첫 번째 낫질을 하는 순간 멈추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연해주에서 첫 번째 수확을 하던 날 눈물을 흘렸던 아버지가. 최서방이 옆에 서서 모른 척해 주었던 그 저녁이. 어쩌면 여기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던 그 순간이.
문인수는 낫질을 했다.
벼가 쓰러졌다. 단을 묶었다. 옆에서 최명준이 묶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날랐다. 아이들이 흘러진 이삭을 주웠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이 땅에서 나온 것은 하나도 버릴 수 없었다.
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오래간만이었다. 카자흐스탄에 온 뒤 처음으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닥불을 피웠다. 나무가 귀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나무를 아끼지 않았다. 불이 타올랐다.
순이가 밥을 지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지은 쌀밥이었다. 문장손의 볍씨에서, 문인수의 손으로 이 붉은 황무지에서 키운 쌀로 지은 밥이었다. 순이가 밥 한 그릇을 먼저 따로 떠놓았다.
"영감 것."
아무도 말이 없었다.
모닥불이 타올랐다. 연해주의 밤과 같았다. 달랐지만 같았다.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조선말이 들렸다. 함경도 억양, 평안도 억양이 뒤섞였다. 누군가 낮게 노래를 불렀다. 함경도 민요였다.
문인수는 밥 한 술을 떴다.
뜨거웠다. 카자흐스탄의 붉은 땅에서 자란 쌀밥이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속 어딘가를 건드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아버지 몫의 밥 그릇을 바라보았다.
봄에 씨앗 심어. 그게 전부야.
심었습니다, 아버지. 자랐습니다. 거뒀습니다.
카레이스키 2대 문인수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에서 볍씨를 심고 쌀을 거둔 이 청년은, 앞으로 이 땅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이 3대 문빅토르가 될 것이다. 소련 체제 안에서 교육을 받고, 콜호스의 영웅이 되고, 그러나 집에서는 언제나 조선말로 이야기하는 그 아들이.
그러나 그것은 다음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문인수는 카자흐스탄의 모닥불 앞에 앉아 뜨거운 쌀밥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첫 번째 가을이었다. 그러나 볍씨는 살아 있었다. 씨앗은 살아 있었다.
카레이스키는 살아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문인수가 카자흐스탄에서 가정을 꾸리고, 소련 체제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조선말을, 밖에서는 러시아말을 써야 했던 카레이스키의 이중적 삶으로 들어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정착 및 벼농사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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