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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by Zorbamoon 2026.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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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바이라인: 조르바문

 

잊혀지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잊혀지는 것은 시간이 만든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흐려진다. 어제의 일이 일주일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일 년이 지나면 윤곽만 남고, 십 년이 지나면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사람의 탓이 아니다. 시간의 탓이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잃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의식적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시간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버리는 것이다.

 

문빅토르는 잊혀지는 것과 싸웠다. 그러나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소련 학교에서 러시아어로 레닌을 배우고 마르크스를 배우는 동안, 집에서는 아버지 문인수가 조선말로 물었다. 오늘 뭘 배웠냐. 빅토르는 조선말로 대답했다. 두 개의 언어. 그러나 영혼은 하나였다. 아버지가 지켜낸 그 영혼이었다. 할아버지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며 품에 안고 온 그 영혼이었다.

 

1960년대 카자흐스탄이었다.

문빅토르는 스물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첫 번째 세대였다. 연해주를 본 적이 없었다. 두만강을 본 적이 없었다. 함경도 단천이 어떤 곳인지 발로 밟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버지 문인수가 밤마다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두만강을 건넜는지, 새벽 강물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복사뼈를 타고 올라오던 냉기가 어떠했는지, 연해주 돌밭에서 어떻게 볍씨를 심었는지,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겨울에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그 이야기들이 빅토르의 피 안에 강물처럼 흘렀다.

 

콜호스에서 빅토르는 단연 주목받는 청년이었다.

소련 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기계를 다룰 줄 알았다. 트랙터를 몰았고 농업 기술을 익혔다. 러시아어가 완벽했다. 작성하는 보고서마다 상관들의 칭찬이 돌아왔다. 소련 관헌들이 그를 눈여겨보았다. 카자흐스탄의 콜호스를 이끌어갈 인재라고 했다. 카레이스키 출신이지만 소련의 일꾼으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빅토르는 알았다.

카레이스키 출신이지만. 그 단서가 붙는 한 자신은 언제나 조건부였다. 소련의 일꾼이 되기 위해 카레이스키라는 것을 뒤에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빅토르는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뿌리에 대해서는 거짓말하지 마라. 그것만큼은 거짓말하지 마라.

콜호스 사무실에서 일하는 어느 날이었다.

소련 관헌 이반이 빅토르를 불렀다. 나이가 들고 배가 나온 사내였다. 콜호스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빅토르가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빅토르."

"네."

"앉아."

빅토르가 의자에 앉았다. 이반이 서류를 내려놓고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카레이스키치고 러시아어가 완벽해."

빅토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러시아어 쓰나?"

빅토르는 잠시 이반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러시아어를 쓴다고 하면 이반이 좋아할 것이었다. 칭찬을 할 것이었다. 책임자 자리가 더 빨리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니요."

이반이 눈썹을 올렸다.

"그럼?"

"조선말을 씁니다."

이반이 잠시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놀란 것인지, 불쾌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침묵이 흘렀다. 사무실 안에 시계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이반이 낮게 웃었다.

"솔직한 친구군. 좋아. 그래도 자네는 유능해. 내년부터 기계 담당 책임자로 일해줘."

빅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근거림이 두려움에서 오는 것인지 안도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선말을 쓴다고 말했다. 그것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소련 체제에서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늘 위험을 동반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했다면 그날 저녁 아버지를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해 가을이었다.

논두렁에서 일하다 돌아온 문인수가 빅토르를 불렀다.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방 안에 들어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웠다. 몸이 많이 수척해진 것이 보였다. 카자흐스탄에 온 이후 아버지는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빅토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앉아."

빅토르가 앉았다.

문인수가 보자기를 꺼냈다. 낡고 낡아 천 자체가 삭아가는 보자기였다. 빅토르는 이 보자기를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담긴 보자기라는 것도 알았다.

문인수가 보자기를 풀었다.

놋쇠 숟가락이 나왔다.

 

방 안의 호롱불 빛이 그 숟가락 위에서 흔들렸다. 작고 낡은 숟가락이었다. 오래된 것이어서 표면이 거칠었다. 그러나 빛은 죽지 않았다. 낡았어도 그 안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빅토르는 그 숟가락을 알고 있었다. 수없이 들은 이야기였다.

함경도 단천에서 증조할머니가 아들에게 쥐여준 것. 두만강을 건너는 새벽에 할아버지 문장손이 보자기 안에 넣고 건넌 것. 연해주 신한촌에서도 꺼내지 않고 간직했던 것. 화물칸 어둠 속에서도 손으로 더듬어 확인했던 것.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겨울에 할아버지가 눈을 감으며 아버지에게 넘겨준 것.

"1960년대 카자흐스탄 고려인 마을 호롱불 아래 놋쇠 숟가락을 아들 손에 쥐여주는 장면 카레이스키 세대 전승"

 

그 모든 것이 이 작고 낡은 숟가락 안에 담겨 있었다.

"이게 뭔지 알지?"

"압니다."

"알면 됐어."

문인수가 숟가락을 빅토르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네 것이야."

빅토르는 숟가락을 받았다. 차가웠다. 단단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이 숟가락이 걸어온 길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단천의 부뚜막 선반. 두만강의 차가운 강물. 연해주의 돌밭. 화물칸의 어둠.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 그 긴 길을 이 숟가락이 걸어왔다.

"아버지, 저한테 주시면 아버지는요?"

 

문인수가 웃었다.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이었다.

"나는 이미 받은 것을 다 줬어. 더 필요 없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빅또리야. 이 숟가락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마. 단천에서 왔어. 두만강을 건넜어. 연해주에서 살았어. 카자흐스탄까지 왔어. 이 숟가락이 간 곳이 우리가 간 곳이야. 우리 뿌리가 어딘지 잊지 마."

빅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하세요."

"언젠가 돌아가야 해. 우리나라로. 네가 못 가면 네 자식이 가야 해. 그 자식이 못 가면 그 자식의 자식이 가야 해. 그것을 전해줘."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카자흐스탄의 가을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소리가 벽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빅토르는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차갑고 단단한 그 감촉이 손바닥에 새겨졌다.

"전하겠습니다."

 

1960년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마을은 겉으로는 완벽한 소련의 마을이었다.

콜호스 사무실에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러시아어 학교가 있었다. 소련 관헌들이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소련의 역사를 배웠다. 러시아어로 노래를 불렀다. 소련의 영웅들 이름을 외웠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면 달랐다.

된장을 담근 독이 마당 한켠에 있었다. 장독대가 있었다. 고추나무가 있었다. 신한촌에서 가져온 것들이 카자흐스탄 땅에서 살아남아 있었다. 어머니들이 자장가를 불렀다. 함경도 민요가 들렸다. 조선말이 들렸다. 밥상 위에 된장국이 올라왔다.

두 개의 세상이 하나의 마을 안에 있었다.

 

빅토르는 그 두 세상을 살았다. 낮에는 트랙터를 몰았다. 러시아어로 보고서를 썼다. 소련 동료들과 보드카를 마셨다. 그러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달랐다. 어머니 류드밀라가 끓여준 된장국을 먹었다. 아버지와 조선말로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빅토르의 하루였다. 매일, 빠짐없이.

그해 봄 빅토르는 나탈리아와 결혼했다.

 

역시 고려인이었다.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한 다른 가족의 손녀였다. 러시아 이름을 가졌지만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된장국을 끓일 줄 알았다. 어머니의 함경도 자장가를 기억했다. 그것이 빅토르에게는 중요했다. 러시아어를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집 안에서 어떤 말을 쓰는가가 중요했다.

 

혼례는 소련식으로 했다.

관청에 가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달랐다. 문인수가 주례를 섰다. 마을 고려인들이 모였다. 된장국을 끓였다. 누군가 함경도 민요를 불렀다. 아이들이 불 주위를 뛰어다녔다.

문인수의 주례사는 짧았다.

"살아라. 그리고 전해라."

신한촌에서 최서방이 했던 말에서 한마디가 더해진 것이었다. 살아라. 그것이 전부다. 거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그리고 전해라. 카레이스키의 혼례 서약은 그렇게 대를 이어 조금씩 길어졌다.

 

1969년 가을이었다.

나탈리아가 아들을 낳았다.

밤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이었다. 카자흐스탄의 가을 바람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불어왔다. 거칠고 차가웠다. 그러나 그 바람 소리를 뚫고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빅토르의 아들. 카레이스키 4대.

 

이름은 드미트리였다.

문드미트리.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두 번째 세대였다.

할아버지 문인수가 처음 보는 증손자를 안았다. 이미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허리가 많이 굽었다. 눈도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이를 안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의 황무지에서 볍씨를 심던 그 손이었다. 수십 년을 삽을 들고 도랑을 판 그 손이었다.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작은 주먹이 문장손의 주먹을 닮아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증조할아버지의 주먹을.

 

문인수가 낮고 천천히 말했다.

"드미트리야."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온도를 느꼈는지 울음을 잠시 멈추었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넜어. 네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 황무지에 볍씨를 심었어. 네 아버지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렸어. 이제 네 차례야."

아무도 말이 없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만 들렸다.

문인수가 아이를 빅토르에게 돌려주었다.

"놋쇠 숟가락 잘 간직해. 언젠가 이 아이에게 줘."

빅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서 나온 문인수는 마당에 서서 오래 하늘을 바라보았다. 카자흐스탄의 밤하늘이었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았다. 아버지 문장손이 연해주에서 바라보던 별과 같은 별이었다. 조선이 사라진 밤에도, 카자흐스탄으로 던져진 밤에도, 해방이 되던 밤에도, 분단이 되던 밤에도, 그 별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문인수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버지 문장손이 별빛 아래서 했던 다짐. 언젠가 반드시 저 두만강 건너에 다시 우리의 나라가 선다. 그 나라는 섰다. 그러나 나뉘었다. 우리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씨앗은 이어졌다. 드미트리라는 이름의 씨앗이 오늘 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이 씨앗이 언젠가 돌아갈 것이었다.

 

그것을 믿었다. 아버지가 믿었듯, 자신도 믿었다. 그리고 빅토르도 믿을 것이었다. 그리고 드미트리도. 그리고 그다음도.

카레이스키는 그렇게 이어졌다.

별빛 아래서, 황무지 위에서, 된장국 냄새 속에서, 조선말 자장가 속에서, 놋쇠 숟가락 하나가 대를 이어 전해지는 그 손바닥 위에서.

 

다음 회에서는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1980년대, 카레이스키 4대 문드미트리가 청년으로 자라나며 처음으로 조국 대한민국의 존재를 실감하는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60년대 카자흐스탄 고려인 콜호스 생활 및 세대 전승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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