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레이스키 유랑사 009회]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세상 1945년
바이라인: 조르바문
사람은 두 개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영혼을 가질 수는 없다. 밖에서는 러시아말을 했다. 소련 체제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러시아말을 해야 했다. 콜호스에서 일할 때도, 관헌들을 만날 때도, 시장에 나갈 때도 러시아말이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달랐다. 문을 닫으면 달랐다. 순이가 된장국을 끓이고, 문인수가 아들에게 말을 가르칠 때, 그 말은 언제나 조선말이었다. 두 개의 언어. 그러나 영혼은 하나였다. 카레이스키의 영혼이었다.
1945년 봄이었다.
카자흐스탄에 온 지 여덟 해가 지났다.
문인수는 서른세 살이 되어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태양이 얼굴을 그을렸다. 손은 더 거칠어졌다. 허리도 조금 굽기 시작했다. 아버지 문장손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싫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는다는 것이 싫지 않았다.
콜호스의 논은 해마다 넓어졌다.
문인수와 마을 사람들이 도랑을 파고 물을 끌어오며 만든 논이 이제는 카자흐스탄에서 손꼽히는 벼농사 지역이 되어 있었다. 소련 관헌들도 그것을 알았다. 조선 사람들이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해냈다는 것을.
그러나 칭찬은 없었다.
그냥 더 많이 내라고 했다. 수확량의 더 많은 부분을 국가에 바치라고 했다. 소련의 방식이었다. 더 잘하면 더 많이 빼앗겼다. 그러나 문인수는 불평하지 않았다. 빼앗기고도 남을 만큼 더 많이 심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아내 류드밀라가 아들을 안고 논두렁으로 나왔다.
류드밀라.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여인이었다. 고려인이었다.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한 다른 가족의 딸이었다.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러시아 이름을 가졌지만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그것이 문인수에게는 중요했다.
아들의 이름은 빅토르였다.
문빅토르. 소련식 이름이었다. 소련에서 태어났으니 소련식 이름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집에서는 달랐다. 문인수는 아들을 부를 때 빅토르라고 부르지 않았다.
"빅또리야."
조선식으로 불렀다. 아이는 두 이름에 모두 대답했다. 밖에서는 빅토르, 집에서는 빅또리야. 두 개의 이름. 두 개의 세상.
아이는 세 살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다. 카자흐스탄의 태양을 닮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눈이 깊었다. 문장손의 눈을 닮았다. 그 깊은 눈이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문인수는 알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류드밀라가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이가 논두렁을 따라 아장아장 걸었다. 붉은 흙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혔다. 문인수는 그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아이의 발자국이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을 밟고 있는 아이의 발자국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 언젠가 말해줄 것이었다. 저 멀리 두만강 너머에 우리나라가 있다고. 조선이라고. 지금은 일본 놈들이 빼앗아 갔지만 언젠가는 돌아간다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야 했다.
그해 여름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것이었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했다는 소식이 먼저 들렸다. 그리고 며칠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카자흐스탄의 조선 사람들 사이에 그 소식이 번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인수는 논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일본이 졌어. 조선이 해방됐어."
문인수는 삽을 든 채 그 자리에 굳었다.
조선이 해방됐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한 번 들었다. 두 번 들었다. 세 번 들었다. 그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별빛 아래서 했던 다짐이 생각났다. 언젠가 반드시 저 두만강 건너에 다시 우리의 나라가 선다. 그 말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울음소리가 났다. 소리 내어 우는 사람, 소리 없이 우는 사람,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서 있는 사람.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문인수는 울지 않았다.
생각했다. 이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꿈꾸던 그 귀환이 이제 가능한 것인가. 두만강을 건너와 연해주에 뿌리를 내리고, 카자흐스탄의 황무지로 던져진 카레이스키들이 이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소련이 조선 사람들을 돌려보내줄 리 없었다. 카자흐스탄에 와서 황무지를 논으로 만들고 콜호스의 핵심 일꾼이 된 사람들을 놓아줄 리 없었다. 소식은 들렸다. 조선이 해방됐다는 소식. 그러나 우리는 여기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붉은 황무지에 있었다. 해방된 조선과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최명준이 옆에 와서 섰다.
"돌아갈 수 있을까?"
문인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모르겠어."
"돌아가고 싶어?"
문인수는 논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논이었다. 파랗게 자라고 있는 벼들이었다. 아버지의 볍씨에서 시작된 벼였다. 카자흐스탄의 붉은 땅에 뿌리를 내린 벼였다.
"돌아가야지."
"그런데?"
"그런데 이 벼는 어떻게 해."
최명준이 잠시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
"자네 아버지 같은 말을 하는군."
문인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땅을 심으면 땅에 묶인다. 씨앗을 심으면 씨앗에 묶인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묶임이 아니었다. 그것이 뿌리였다.
해방의 기쁨은 길지 않았다.

조선이 해방됐다는 소식 뒤에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조선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는 것이었다. 삼팔선이라는 선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조선을 나누었다는 것이었다.
문인수는 그 소식을 듣고 오래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꿈꾸던 조선. 별빛 아래서 다짐했던 그 나라. 언젠가 돌아가리라 믿었던 그 땅. 그 땅이 둘로 나뉘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었다. 함경도 단천은 어느 쪽이 됐을까. 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던 그 강변은 어느 쪽이 됐을까.
모르기 때문에 더 아팠다.
순이가 옆에 앉았다.
이미 예순이 가까운 나이였다. 카자흐스탄의 세월이 어머니를 늙게 했다. 허리가 많이 굽었다. 그러나 눈빛은 굽지 않았다.
"인수야."
"어머니."
"네 아버지가 살아서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문인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둘 다요."
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둘 다였겠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어디선가 빅토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세 살짜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카자흐스탄의 저녁 공기를 채웠다. 문인수가 일어서서 아이에게로 갔다.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었다. 까무잡잡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문장손의 눈을 닮은 눈이었다. 그 깊은 눈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문인수는 아이에게 조선말로 말했다.
"빅또리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해."
아이는 아직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빛은 알았다. 그 눈빛이 무섭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단단했다. 돌처럼 단단했다.
그 눈빛을 빅토르는 기억할 것이었다. 평생.
1945년 카자흐스탄의 가을이 왔다.
해방의 기쁨도, 분단의 슬픔도, 귀환의 꿈도, 모두 가슴 안에 넣어두고 문인수는 낫을 들었다. 벼를 거두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여덟 번째 수확이었다. 해마다 논이 넓어진 만큼 수확도 늘었다. 쌀이 넉넉해졌다. 마을 사람들의 밥상이 나아졌다.
수확을 마친 날 저녁 문인수는 논두렁에 혼자 앉았다.
베어낸 벼 그루터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을 해가 기울었다. 카자흐스탄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아버지 몫의 밥 한 그릇을 들고 나왔다.
그루터기 앞에 놓았다.
아버지가 없는 여덟 번째 가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볍씨에서 시작된 벼가 여덟 번째로 이 땅에서 자랐다. 씨앗은 살아 있었다. 아버지는 가셨지만 씨앗은 살아 있었다.
저 멀리 북쪽 하늘에 별이 하나 떴다.
문인수는 그 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연해주에서 바라보던 별과 같은 별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그 별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조선이 해방되어도, 분단이 되어도, 그 별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라는 나뉘었다. 고향은 멀었다. 그러나 별은 그대로였다.
문인수는 일어섰다.
내일도 논에 나가야 했다. 가을 논을 정리하고, 내년 봄 심을 볍씨를 갈무리해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향했다. 토굴에서 시작해 이제는 조금 더 나은 집이 된 그곳으로. 류드밀라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빅토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그리고 어머니 순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카레이스키는 살아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3대 문빅토르가 자라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를 따라갑니다. 소련 체제 안에서 교육을 받고 콜호스의 기술자로 성장하면서도, 집에서는 조선말을 잊지 않던 그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광복 및 분단 전후 카자흐스탄 고려인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썸네일 alt="카레이스키 유랑사 009회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세상 1945년" title="카레이스키 유랑사 009회 카자흐스탄 고려인 해방 분단 문인수"
본문 이미지 alt="1945년 카자흐스탄 저녁 논두렁에 홀로 앉아 별을 바라보는 조선 남성 고려인 카레이스키 역사" title="1945년 카자흐스탄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슬픔 카레이스키 문인수
'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0) | 2026.06.10 |
|---|---|
| [카레이스키 유랑사 008회] 붉은 땅에 볍씨를 심다, 문인수의 봄 1938년 (0) | 2026.06.10 |
| [카레이스키 유랑사 007회] 붉은 황무지, 카자흐스탄의 첫 겨울 1937년 (0) | 2026.06.10 |
| [카레이스키 유랑사 006회] 스탈린의 발소리, 연해주에 드리우다 1937년 (1) | 2026.06.10 |
| [카레이스키 유랑사 005회] 아들이 태어나다, 문인수의 첫 울음 1912년 (0) | 202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