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11회]
소련이 흔들리다, 드미트리의 청춘 1980년대
바이라인: 조르바문

제국은 영원하지 않다.
로마가 그랬고, 몽골이 그랬고, 대영제국이 그랬다. 그리고 소련도 그랬다. 70년을 버텨온 거대한 제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균열은 소리 없이 시작된다. 댐이 무너지기 전에 실금이 먼저 가듯, 소련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곳곳에서 균열이 보였다. 그러나 그 균열을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청년 문드미트리는 그 균열을 보았다. 아니, 느꼈다.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1985년 카자흐스탄이었다.
문드미트리는 열여섯 살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두 번째 세대였다. 할아버지 문인수는 드미트리가 열 살 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살아 있었다. 아버지 문빅토르가 매일 밤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던 새벽 이야기. 연해주 돌밭에서 볍씨를 심던 이야기. 화물칸 어둠 속에서 한 달을 버티던 이야기. 카자흐스탄의 첫 번째 겨울에 눈을 감던 이야기.
드미트리는 그 이야기들을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러나 열여섯 살의 드미트리에게 그 이야기들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처럼, 알고는 있지만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카자흐스탄의 흙을 밟고 자랐다. 카자흐스탄의 태양 아래서 트랙터를 몰았다. 카자흐스탄의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웠다. 그것이 드미트리의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해 봄이었다.
학교에서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소련의 새 서기장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개혁과 개방. 그 말들이 학교 복도에서 들렸다. 선생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흥분했다. 어떤 선생님은 불안해했다. 드미트리는 그 달라진 공기를 느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물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뭐예요?"
빅토르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바꾼다는 거야."
"뭘요?"
"소련을."
드미트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련을 바꿀 수 있어요?"
빅토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이 말했다.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1987년이 되었다.
드미트리는 열여덟 살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콜호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빅토르 옆에서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트랙터를 분해하고 조립했다.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손재주가 좋았다. 빅토르가 흐뭇해했다.
그러나 드미트리의 머릿속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콜호스 사무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생긴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낡고 화면이 작은 텔레비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뉴스를 보았다. 소련의 뉴스였다. 고르바초프가 나왔다. 개혁을 말했다. 그러나 그 텔레비전에서 드미트리의 눈을 붙잡은 것은 소련 뉴스가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뉴스가 끝나고 화면이 바뀌었다. 잠깐, 아주 잠깐 다른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수신된 외국 방송이었다. 화면이 흐릿했다. 지직거렸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그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준비 소식이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였다. 자동차가 넘쳐나는 도로였다. 사람들이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나누던 그 말과 닮아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화면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저게 어디야.
옆에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저 나라가 어디야?"
동료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국 아냐? 남쪽 한국."
한국.
그 말이 드미트리의 가슴 안에서 이상하게 울렸다. 한국. 우리나라. 아버지가 말하던 그 나라. 할아버지가 말하던 그 나라.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며 등에 짊어지고 온 그 기억 속의 나라.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았다.
빅토르는 마당에서 연장을 손보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옆에 앉았다.
"아버지."
"응."
"텔레비전에서 한국 봤어요."
빅토르의 손이 멈추었다. 고개를 들었다.
"어떻던가?"
"빌딩이 많았어요. 차도 많았고. 사람들이 우리말 비슷한 말을 했어요."
빅토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우리말이야. 조선말이야."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우리말이에요?"
"그래. 우리가 집에서 쓰는 말이랑 같은 말이야. 억양이 다르고 단어가 다르지만 같은 말이야."
드미트리는 그 말을 한참 생각했다.
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우리말을 쓰고 있었다. 저 자동차들이 넘쳐나는 도로에서 우리말이 들렸다.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며 떠나온 그 땅이 저렇게 되어 있었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움인지, 부러움인지, 아니면 처음 보는 것인데 왜인지 낯설지 않은 그 기묘한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오래 가슴 안에 남았다.
1989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 소식이 카자흐스탄까지 전해지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콜호스 사무실이 술렁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소련 관헌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무언가 큰 것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모두 느꼈다.
드미트리는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찾았다.
빅토르는 논두렁에 있었다. 가을 수확이 끝난 논이었다. 그루터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빅토르가 혼자 그 논두렁에 서서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빅토르가 돌아보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대요."
빅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드미트리가 옆에 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서 빅토르가 말했다.
"소련도 무너질 거야."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그래."
"그러면 우리는요?"
빅토르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문장손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문인수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꺾이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돌아가는 거야."
"어디로요?"
"우리나라로."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서울의 풍경이 떠올랐다. 빌딩들. 자동차들.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나라였다.
"진짜 갈 수 있어요?"
빅토르가 처음으로 웃었다.
"네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넌 것처럼. 두려워도 발을 내딛으면 가는 거야."
드미트리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두려워도 발을 내딛으면 가는 거야.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두만강에서, 연해주에서, 화물칸에서, 황무지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그 방식이었다.
1991년 봄이었다.
소련이 정말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트 3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조지아가 흔들렸다. 카자흐스탄도 술렁였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을 돌려달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 고려인들은 또다시 이방인이 되는 것이었다. 1937년 연해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땅이 바뀌면 그 땅의 주인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면 고려인들은 또다시 손님 신세가 되었다.
빅토르가 어느 날 밤 드미트리를 불렀다.
방 안에 둘만 있었다. 어머니 나탈리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빅토르가 보자기를 꺼냈다.
드미트리는 알았다. 그 보자기를.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담긴 보자기였다.
빅토르가 보자기를 풀었다.
놋쇠 숟가락이 나왔다.
드미트리는 그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작고 낡은 숟가락이었다. 그러나 그 숟가락이 걸어온 길을 알았다. 단천에서 두만강을 건너고,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까지 온 그 길을.
"이게 뭔지 알지?"
"압니다."
빅토르가 숟가락을 드미트리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네 것이야."
드미트리는 숟가락을 받았다. 차가웠다. 단단했다. 증조할아버지의 손이 닿았던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이 닿았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손이 닿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손에 있었다.
"드미트리야."
"네."
"우리나라로 가야 해. 네가 가야 해."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나는 여기서 마무리해야 해. 이 논을 지켜야 해. 이 땅에 심은 것들을 지켜야 해. 그러나 너는 가야 해.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넌 것처럼. 너는 대한민국으로 건너가야 해."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드미트리는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차갑고 단단한 그 감촉이 손바닥에 새겨졌다.
"가겠습니다."
그 두 글자가, 1902년 두만강 강변에서 문장손이 물속으로 발을 내딛던 그 순간과 닮아 있었다. 두려움을 안고서도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120년 동안 이어져 온 그 방식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1991년 소련이 마침내 해체되고, 문드미트리가 대한민국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80년대 소련 해체 전후 카자흐스탄 고려인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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