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25회]
조선말 소리, 1902년 연해주 신한촌
바이라인: 조르바문

사람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의 냄새가 아니다.
고향의 소리다.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소리. 아버지가 마당에서 기침을 하던 소리. 동생들이 골목에서 뛰어노는 소리. 그 소리들은 살아있을 때는 그냥 공기처럼 있었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떠나고 나면 달라진다. 없어지고 나면 달라진다. 그때서야 그 소리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안다.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땅에서 사흘을 걸어 신한촌 어귀에 섰을 때, 처음 들려온 것이 조선말 소리였다. 그 순간 문장손은 알았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그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그리워하는 줄도 몰랐던 것을 잃고 나서야 아는 것처럼, 그 조선말 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비로소 알았다.
1902년 5월, 연해주 신한촌 어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반나절을 걷는 길이었다.
문장손이 그 길을 걷는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 사람들이 지나쳤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자흐 사람들이 지나쳤다. 그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낯선 말들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그 말들이 모두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낯선 말소리들 사이에 있는 것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사람들이 있는데 혼자인 것 같은 쓸쓸함이었다.
그러다 언덕 하나를 넘었을 때였다.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렸다. 바람에 실려왔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그냥 소리였다. 그런데 한 걸음 더 가자 알았다.
조선말이었다.
누군가 조선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였다. 아이를 부르는 소리였다. 빨리 와서 밥 먹으라는 소리였다. 단천에서 수없이 들어온 그 소리였다. 어머니가 동생들을 부르던 그 소리였다.
문장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멈춘 것이 아니었다. 멈추어진 것이었다. 발이 저절로 멈추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났다. 울 생각이 없었는데 났다. 두만강을 건너던 날도 울지 않았다. 사흘을 걸어오는 동안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말 소리 하나에 눈물이 났다.
문장손은 당황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빨리 닦았다. 사내가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났다. 조선말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소리가 눈물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조선말 소리를 들으며.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두만강을 건너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의 낯선 거리를 걷는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사이에서 얼마나 혼자였는지를. 그것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외로움 따위에 무릎 꿇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었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속일 수 없었다.
조선말 소리가 그것을 깨운 것이었다.
안산, 1995년 가을.
드미트리는 공장에서 퇴근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소리가 들렸다.
러시아어였다. 고려인 아주머니 두 명이 골목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이었다. 드미트리가 아는 아주머니들이었다. 같은 공장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다.
드미트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걸음이 느려졌다.
러시아어였다.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드미트리의 언어였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안산에서는 늘 한국말을 들었다.
공장에서 한국말을 들었다. 골목에서 한국말을 들었다. 편의점에서 한국말을 들었다. 한국말을 많이 배웠다. 이제 꽤 알아들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았다. 늘 조금씩 긴장하며 들었다. 혹시 못 알아들을까봐 긴장하며 들었다.
그런데 러시아어가 들리는 순간 그 긴장이 사라졌다.
몸이 풀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드미트리는 알았다. 고향의 소리였다. 카자흐스탄의 소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리였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잠깐이지만 카자흐스탄에 있는 것 같았다. 논두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된장국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드미트리는 그 아주머니들 옆을 지나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했다.
아주머니들이 드미트리를 보며 웃었다.
"어, 드미트리 씨. 퇴근해요?"
"네."
"저녁 먹었어요?"
"아직요.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 가려고요."
"잘 먹어요."
드미트리가 지나쳤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두 아주머니가 다시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소리가 골목에 낮게 깔렸다.
드미트리는 그 소리를 잠시 듣다가 다시 걸었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신한촌 어귀에서 처음 조선말 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낯선 땅에서 익숙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외로움이 잠깐 옆으로 비켜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1902년 5월, 신한촌.
눈물을 닦고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초가집이 보였다. 귀틀집이 보였다. 낮은 담장이 보였다. 조선에서 본 것들과 닮아 있었다. 아니, 닮은 것이 아니었다. 같은 것이었다. 조선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된장독이 마당에 있었다. 장독대가 있었다. 고추나무가 담장 아래 심어져 있었다. 그 고추나무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안산 골목에서 러시아어 소리에 멈추었던 것처럼, 문장손은 그 고추나무 앞에서 멈추었다.
단천에서 보던 고추나무였다.
어머니가 담장 아래 심으시던 그 고추나무였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어 어머니가 따시던 그 고추였다. 그 고추로 만든 고추장이 밥상에 올라오던 그 냄새가 났다. 실제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났다. 기억이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장손은 그 고추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어디서 왔나?"
뒤를 돌아보았다. 사내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얼굴에 오랜 햇볕과 바람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눈이 깊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왠지 오래 알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천입니다."
문장손이 대답했다.
"함경도군. 언제 건넜어?"
"사흘 됐습니다."
사내가 문장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닳아빠진 신발, 진흙이 마른 바지, 등에 짊어진 낡은 보자기. 그리고 그 눈빛. 사내는 오래 그 눈빛을 보았다.
"일할 수 있나?"
"하러 왔습니다."
사내가 짧게 웃었다.
"최서방이야. 따라와."
그것이 전부였다. 악수도 없었다.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문장손은 그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말이 많은 사람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문장손은 살면서 배웠다. 말이 적은 사람이 믿을 만했다. 최서방은 말이 적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최서방이 내준 방은 작았다.
귀틀집 한켠에 딸린 방이었다. 사람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였다. 그러나 문장손은 그 방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벽이 있었다. 지붕이 있었다.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헤매고 사흘을 걸어오는 동안 그런 것이 없었다.
최서방이 말했다.
"오늘은 자라. 내일부터 일해."
"어떤 일입니까?"
"밭이야. 내가 가르쳐줄게."
"감사합니다."
최서방이 방문을 닫으려다 멈추었다.
"밥은 먹었어?"
문장손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걸으면서 산열매를 따 먹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최서방이 잠시 문장손을 바라보더니 말없이 나갔다.
잠시 후 돌아왔다.
밥 한 그릇이었다. 된장국이 함께 있었다.
"먹어."
말이 없었다. 그냥 내려놓고 나갔다.
문장손은 그 밥그릇을 들여다보았다.
된장국이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뜨거웠다. 그 뜨거운 김이 얼굴을 감쌌다. 두만강을 건너던 날부터 차갑기만 했던 것들이, 이 뜨거운 김에 조금씩 녹는 것 같았다.
숟가락을 들었다.
놋쇠 숟가락이었다.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 숟가락으로 이 연해주 땅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는 것이었다.
문장손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
어머니.
다시 그 한 글자를 속으로 불렀다.
단천에서 끓여주시던 된장국과 맛이 다를 것이었다. 물이 다르고 흙이 다르니 된장 맛이 다를 것이었다. 그러나 뜨거웠다. 뜨거운 것만큼은 같았다.
밥을 먹었다.
천천히 먹었다. 한 술, 한 술. 목이 메었다. 그러나 삼켰다. 다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이 그릇을 채워준 사람이 최서방이었다. 말없이 채워준 사람이었다. 단천에서 두만강까지 사흘을 걸어오는 동안 아무도 이 그릇을 채워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채워주었다.
카레이스키는 그런 것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끼리만 아는 것이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밥그릇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문장손은 그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안산, 1995년 가을 저녁.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이었다.
드미트리가 들어서자 갈리나 아주머니가 아무 말 없이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주문하지 않아도 됐다. 드미트리가 오면 된장국이었다. 나디아가 오면 된장국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오면 된장국 두 그릇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였다.
나디아가 조금 늦게 들어왔다. 앉으면서 말했다.
"오늘 월급날이에요."
드미트리가 고개를 들었다.
"저도요."
"카자흐스탄 가는 돈 모으는 통장에 넣었어요."
드미트리가 웃었다.
"저도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된장국을 들고 왔다. 두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밝아요 둘 다?"
나디아가 말했다.
"월급날이에요."
갈리나 아주머니가 웃었다.
"그래도 그렇지. 월급날마다 그렇게 밝지는 않잖아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봄이 되면 카자흐스탄에 간다. 우즈베키스탄에도 간다. 아버지를 뵙는다. 어머니를 뵙는다. 할머니를 뵙는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서서, 이제 같이 살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음 안에 있었다.
된장국이 뜨거웠다.
숟가락을 들었다.
드미트리의 놋쇠 숟가락이었다. 1902년 단천에서 출발한 그 숟가락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그 숟가락이었다. 연해주에서 연해주의 밥을 먹은 그 숟가락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황무지의 밥을 먹은 그 숟가락이었다.
그리고 지금 안산에서 된장국을 뜨고 있었다.
밥 한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가슴 안에서 퍼졌다.
1902년 연해주에서 최서방이 내준 밥 한 그릇이 문장손의 가슴을 데웠던 것처럼, 지금 이 뜨거운 된장국이 드미트리의 가슴을 데우고 있었다.
9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같은 뜨거움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1902년 신한촌에서 문장손이 처음으로 돌밭에 삽을 들이밀던 날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다시 굳어가는 그 과정을, 그리고 밤마다 모닥불 앞에서 조선 사람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듭니다. 안산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봄 카자흐스탄 방문을 앞두고 설레는 겨울을 보내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연해주 신한촌 및 고려인 이주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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