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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27회]불씨, 1902년 연해주 신한촌의 밤

by Zorbamoon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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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유랑사 027회]
불씨, 1902년 연해주 신한촌의 밤

바이라인: 조르바문


"카레이스키 유랑사 027회 불씨 1902년 연해주 신한촌의 밤 문장손 독립운동 카레이스키"




불씨는 바람에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이 불씨를 키운다.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불씨가 살아있는 한 불은 꺼지지 않는다. 꺼진 것처럼 보여도 재 속에 살아있다. 손으로 재를 헤쳐보면 거기 붉게 남아있다. 그 불씨에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얹으면 다시 살아난다.

1902년 연해주 신한촌에 그런 불씨가 있었다.

조선을 잃지 않겠다는 불씨였다.

관아의 수탈을 피해 건너온 사람도 있었고, 굶주림을 피해 건너온 사람도 있었고, 독립의 뜻을 품고 건너온 사람도 있었다. 사연은 달랐다. 그러나 가슴 안에 그 불씨 하나는 같았다. 조선을 잃지 않겠다는 것. 빼앗겨도 잊지 않겠다는 것. 그 불씨가 신한촌의 밤마다 모닥불 앞에서 살아있었다. 누가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살아있었다.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의 가슴 안에서 살아있었다.

문장손이 그 불씨를 처음 본 것은 신한촌에 온 지 보름째 되던 밤이었다.



1902년 5월, 신한촌.

보름이 지났다.

손바닥의 물집이 터지고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돌밭이 조금씩 땅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아침마다 삽을 들면 어제보다 땅이 넓어져 있었다. 그것이 힘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와서 거들기 시작했다.

말없이 왔다. 삽을 들고 왔다. 같이 팠다. 점심이 되면 누군가 밥을 가져왔다. 된장국이었다. 먹고 나면 다시 팠다.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라는 것이 달랐다. 혼자 팔 때보다 빨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혼자 팔 때보다 덜 외로웠다.

그날 밤이었다.

모닥불이 꺼질 즈음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문장손도 일어서려는데 최서방이 앉은 채로 말했다.

"아직 가지 마."

문장손이 다시 앉았다.

모닥불 앞에 최서방과 문장손만 남았다. 그리고 낯선 얼굴 서넛이 더 있었다. 마을 사람이었지만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최서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를 믿어도 되겠나?"

문장손은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낮의 것과 달랐다. 낮에는 그냥 마을의 어른 같은 눈빛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더 깊었다. 더 무거웠다.

"무슨 일입니까?"

최서방이 잠시 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군자금이야."

문장손이 눈을 들었다.

"조선에 있는 의병들한테 보내야 해. 일본 놈들 눈을 피해서."

방 안처럼 조용해졌다. 모닥불 타는 소리만 들렸다.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재가 바람에 날렸다. 낯선 얼굴들이 문장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문장손은 불을 바라보았다.

군자금. 의병. 조선.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그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배를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불 앞에서 그것들이 다시 눈앞에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관아에 항의하러 갔다가 매질을 당하고 돌아온 날부터 앓기 시작하셨다. 일 년을 못 넘기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문장손의 손을 잡으셨다.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러나 말씀을 못 하셨다. 힘이 없으셨다.

그 못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문장손은 그날 밤 모닥불 앞에서 알 것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두 글자였다.

최서방이 그 두 글자를 듣고 오래 문장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고마워."

최서방이 고마움을 입 밖에 내는 것을 처음 들었다.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고맙다고 했다.

문장손은 그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안산, 1995년 겨울.

드미트리는 퇴근 후 고시원 방에 앉아 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아버지의 편지가 아니었다.

최명준 아저씨 아들 최영호에게서 온 편지였다. 최영호는 드미트리보다 먼저 다른 공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안산을 떠나 인천으로 갔다고 했다. 인천에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돈도 더 준다고 했다.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드미트리야.

나 인천에 왔어. 여기 일이 더 많아. 근데 안산이 그립다. 갈리나 아주머니 된장국이 그립다. 야, 솔직히 말할게. 나 거기서 외로웠거든. 말이 안 통하고, 소련 놈 소리 듣고, 그래도 버텼잖아. 근데 안산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어. 버티던 곳이 그리워지는 거 있잖아. 그게 이상하더라.

드미트리는 그 문장에서 멈추었다.

버티던 곳이 그리워진다.

그 말이 맞았다. 카자흐스탄이 그랬다. 카자흐스탄에서 버텼다. 힘들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불안했다. 그런데 지금 카자흐스탄이 그리웠다. 아버지의 논이 그리웠다.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리웠다. 마을 모닥불이 그리웠다.

버티던 곳이 그리운 것이 카레이스키의 숙명이었다.

연해주를 버텼던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에서 연해주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카자흐스탄을 버텼던 아버지가 대한민국에 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버팀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버팀이 되었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순환이었다.

드미트리는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있었다. 겨울이라 많이 자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살아있었다. 차가운 창가에서도 살아있었다.

드미트리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최영호야.

버티던 곳이 그리워진다는 말 맞아. 나도 카자흐스탄이 그리워. 근데 있잖아, 나는 그게 나쁜 게 아닌 것 같아. 그리움이 있다는 건 거기서 뭔가를 쌓았다는 거잖아. 뿌리를 조금이라도 내렸다는 거잖아. 뿌리 없는 것은 그리울 것도 없으니까.

갈리나 아주머니 된장국은 나도 그리울 것 같아. 언제까지 안산에 있을지 모르지만.

잘 지내라.

드미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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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연해주 신한촌 꺼져가는 모닥불 앞에서 군자금 제안을 받는 문장손 하겠습니다 두 글자 카레이스키 독립운동"




다시 1902년 연해주 신한촌으로 돌아간다.

최서방이 고맙다고 한 밤 이후 문장손의 삶은 두 개가 되었다.

낮의 삶과 밤의 삶이었다.

낮에는 돌밭을 팠다. 삽을 들었다. 돌을 골라냈다. 흙을 뒤집었다. 볍씨를 심을 자리를 만들었다. 그것이 낮의 삶이었다.

밤에는 달랐다.

모닥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떠나면 최서방과 몇몇 사람들이 남았다. 문장손도 남았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에서 들어오는 소식이 있었다. 누군가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가져온 소식이었다. 의병들이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일본 관헌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들이 모닥불 재처럼 낮게 쌓였다.

돈이 모였다.

콜호스에서 번 돈이 아니었다. 신한촌 사람들이 조금씩 모은 돈이었다. 밭에서 벌어 먹고 남은 것을 모은 돈이었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쌓였다.

그 돈을 조선으로 보내야 했다.

국경을 넘어야 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야 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들키면 끝이었다.

문장손이 그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심부름꾼 역할이었다. 국경을 넘는 사람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장터에서 물건값을 치르는 척하며 건네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이 아니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무언가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뜨거운 것을 가슴에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차가운 척하는 것. 그것이 문장손이 낮에 돌밭을 파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했다.

매일 했다.

아버지가 관아에서 매질을 당하고 돌아오던 날의 등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 굽은 등이. 그 말 못 하신 유언이. 그것이 문장손을 움직였다.

밥 한 끼보다 그것이 더 배를 채웠다.



안산, 1995년 겨울 저녁.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이었다.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마주 앉아 있었다. 된장국이 뚝배기 안에서 끓고 있었다.

나디아가 말했다.

"드미트리 씨, 봄에 카자흐스탄 가는 거 확실하죠?"

"네. 돈 거의 다 됐어요."

"비행기 표는요?"

"알아보고 있어요. 박성호 씨한테 물어봤어요. 알마티 경유하면 더 싸대요."

나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알마티에서 갈 수 있어요. 타슈켄트까지요."

"같이 가요. 알마티까지 같이 가고, 거기서 나디아 씨는 타슈켄트로, 저는 카자흐스탄 마을로."

"며칠이나요?"

"일주일이요. 공장에 말해놨어요."

나디아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할머니한테 편지 썼어요. 봄에 간다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나디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말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타슈켄트의 노인이 안산의 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해주에서 화물칸에 실려 우즈베키스탄으로 던져졌던 그 할머니가. 볍씨를 품에 안고 황무지로 갔던 그 할머니가. 손녀가 대한민국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는 그 할머니가.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들으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카자흐스탄의 논두렁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을 아버지가. 어머니의 된장국 냄새가. 마을의 그 차갑고 넓은 하늘이.

드미트리가 말했다.

"빨리 갑시다."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봄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와요. 반드시 와요."

두 사람이 된장국을 먹었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겨울을 조금 녹이는 것 같았다.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안산의 겨울 바람이었다. 골목을 쓸었다. 그러나 식당 안은 따뜻했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된장국을 더 퍼주러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퍼주었다. 그러나 그 손길이 말했다.

잘 될 거야. 봄은 오게 되어 있어. 기다려.

1902년 신한촌의 모닥불이 꺼지지 않았던 것처럼, 1995년 안산의 이 된장국도 식지 않았다.

불씨는 바람에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이 불씨를 키운다.

카레이스키가 120년 동안 그랬듯이.


"1995년 겨울 안산 갈리나 식당에서 된장국을 앞에 두고 봄을 기다리는 드미트리와 나디아 카레이스키 불씨"



다음 회에서는 1903년 봄, 연해주 신한촌의 돌밭에 처음으로 볍씨가 심어지던 날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문장손이 단천에서 품에 안고 온 볍씨를 처음으로 연해주의 흙에 내려놓던 그 손의 떨림을 깊이 파고듭니다. 안산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봄을 기다리며 카자흐스탄 방문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연해주 신한촌 독립운동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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