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28회]
볍씨를 내려놓다, 1903년 봄 연해주
바이라인: 조르바문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이 씨앗이 이 흙에서 자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수확의 날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이 없으면 심지 못한다.
절망한 사람은 씨앗을 심지 않는다.
오직 내일을 믿는 사람만이 오늘 씨앗을 심는다.
문장손이 단천에서 두만강을 건너며 품에 안고 온 볍씨를 처음으로 연해주의 흙에 내려놓은 것은 1903년 봄이었다. 신한촌에 온 지 거의 일 년이 지난 때였다. 일 년 동안 돌을 골라내고 땅을 뒤집어 만든 논이었다. 그 논에 볍씨를 처음 심던 날, 문장손의 손이 떨렸다. 두만강을 건너던 날도 떨지 않았던 손이. 최서방 앞에서 하겠습니다 두 글자를 말하던 날도 떨지 않았던 손이. 씨앗을 흙에 내려놓는 그 순간에 떨렸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씨앗을 심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1903년 봄, 연해주 신한촌.
눈이 녹기 시작했다.
연해주의 봄은 조선의 봄과 달랐다. 더 느리게 왔다. 3월이 지나도 땅이 얼어있었다. 4월이 되어서야 겨우 흙이 풀리기 시작했다. 문장손은 그 흙이 풀리는 것을 매일 아침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땅을 눌러보았다. 아직 딱딱하면 기다렸다. 조금 물렁해지면 하루 더 기다렸다.
심어야 할 때를 알아야 했다.
너무 일찍 심으면 얼어 죽는다. 너무 늦게 심으면 수확을 못 한다. 그 사이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찾는 것이 농부의 일이었다. 단천에서 아버지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었다.
4월 중순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땅을 눌러보았다. 손가락이 들어갔다. 봄 흙이었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그 흙이었다.
지금이었다.
최서방에게 갔다.
"지금 심겠습니다."
최서방이 문장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늘이 맞겠어."
그것으로 충분했다.
문장손은 보자기를 가지러 방으로 갔다. 볍씨 봉지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 쏟아보았다. 작고 딱딱한 낟알들이었다. 단천에서 가져온 씨앗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씨앗을 받아 이어온 함경도 재래종이었다. 어떤 흉년에도 먹지 않고 따로 갈무리해 두었다는 씨앗이었다.
문장손은 그 낟알들을 손바닥 위에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씨앗들이 단천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되었다. 두만강의 차가운 강물 속에서도 젖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낯선 거리에서도 살아있었다. 신한촌의 첫 번째 겨울을 이 방 한켠에서 버텨냈다.
살아있었다.
문장손은 봉지를 다시 싸서 들고 논으로 갔다.
-
논 앞에 섰다.
일 년 동안 돌을 골라내고 흙을 뒤집어 만든 논이었다. 작았다. 연해주의 넓은 땅에서 보면 손바닥만 한 논이었다. 그러나 문장손이 두 손으로 만든 논이었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만든 논이었다.
그 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볍씨 봉지를 열었다.
손가락으로 흙을 조금 파냈다. 깊지 않게. 볍씨 하나가 들어갈 만큼만. 그 안에 볍씨 하나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문장손은 그 떨림을 느끼며 멈추었다.
이 씨앗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갑자기 실감이 왔다. 단천을 떠나오면서 이 씨앗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주신 놋쇠 숟가락과 함께 가져왔다. 두 가지였다. 이 두 가지가 자신이 단천에서 가져온 전부였다. 그 중 하나를 지금 이 연해주의 흙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을.
여기서 살겠다는 것을.
볍씨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 모든 것을 의미했다.
손가락으로 흙을 살짝 덮었다.
그리고 다음 자리를 팠다. 또 볍씨 하나를 내려놓았다. 덮었다. 또 팠다. 또 내려놓았다. 또 덮었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가 중천에 올랐다. 볍씨를 다 심기까지 오전이 걸렸다. 마지막 볍씨를 심고 흙을 덮은 뒤 문장손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논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흙만 보였다. 볍씨는 흙 아래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 자라고 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심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매년 봄 이렇게 하셨을 것이었다. 단천의 논에서. 무릎을 꿇고 볍씨를 내려놓으셨을 것이었다. 손이 떨리셨을 것이었다. 아니, 어머니는 손이 떨리지 않으셨을 것이었다. 수십 년을 하신 일이었으니. 그러나 처음 하셨을 때는 떨리셨을 것이었다.
모든 처음은 떨린다.
그 떨림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안산, 1996년 봄.
드미트리는 창가의 두 화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을 나고 봄이 왔다. 화분의 싹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겨울 동안 작아졌던 것들이 봄 햇살을 받아 다시 초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손가락으로 흙을 살짝 건드려보았다.
촉촉했다. 봄 흙이었다.
카자흐스탄에 가기로 한 봄이었다.
비행기 표를 샀다. 4월 중순 출발이었다. 알마티 경유로 샀다. 알마티에서 나디아는 타슈켄트로, 드미트리는 카자흐스탄 마을로 가는 것이었다. 5일 후에 알마티에서 다시 만나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나디아가 방에 왔다.
화분을 보고 말했다.
"많이 자랐어요."
"네. 봄이 오니까요."
나디아가 드미트리의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드미트리 씨 것이 더 커요."
드미트리가 웃었다.
"물을 더 줘서요."
"제 것도 더 줘요?"
"같이 줘요. 항상."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것 같았다.
드미트리가 볍씨 봉지를 꺼냈다.
아직 남아있는 볍씨였다. 화분에 심고 남은 것이었다.
"이거요."
나디아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카자흐스탄에 가서 아버지 논에 심으려고요. 안산에서 자란 씨앗이에요. 여기서 받은 씨앗을 거기 심는 거예요."
나디아가 그 봉지를 받았다.
"거기서 또 씨앗을 받아오는 거예요?"
"네. 그리고 여기 다시 심는 거예요."
나디아가 그 봉지를 들여다보았다.
작고 딱딱한 낟알들이었다.
"씨앗이 여행을 하네요."
드미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랬어요. 단천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여기로. 그리고 이제 여기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나디아가 볍씨 봉지를 드미트리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잘 가져가요."
"같이 가요."
나디아가 웃었다.
봄 햇살이 창가를 가득 채웠다. 두 화분이 그 햇살 안에서 초록빛으로 빛났다. 드미트리의 것과 나디아의 것이 나란히.
같은 햇살을 받으며 나란히 자라고 있었다.
다시 1903년 연해주로 돌아간다.
볍씨를 다 심고 일주일이 지났다.
열흘이 지났다.
보름이 지났다.
문장손은 매일 아침 논에 나가 흙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흙만 있었다. 볍씨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최서방에게 물었다. 최서방이 말했다.
"기다려."
그것이 전부였다.
기다렸다.
매일 아침 논에 나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조금 주었다. 기다렸다. 또 나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또 물을 주었다. 또 기다렸다.
스무 날째 되던 아침이었다.
논에 나갔다. 흙을 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하얗고 가는 것이 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실처럼 가늘었다. 그러나 분명히 올라오고 있었다. 두 개였다. 나란히 두 개가.
문장손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을 뻗었다. 건드리려다 멈추었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가늘었다. 너무 연했다. 그냥 보기만 했다.
오래 보았다.
눈물이 났다.
두만강을 건너던 날 울지 않았다. 신한촌 어귀에서 조선말 소리를 들었을 때 울었다. 고추나무 앞에서 울었다. 최서방이 내준 밥 앞에서 울 뻔했다. 그런데 이 하얗고 가는 싹 앞에서 또 울었다.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단천의 논에서 이것을 보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이렇게 우셨을까. 아니면 웃으셨을까. 아니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셨을까.
물어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단천에 계셨다. 두만강 너머에 계셨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에게 이 싹을 보여드릴 수 없었다.
그것이 가장 서러웠다.
이렇게 좋은 것을, 이렇게 기쁜 것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것이.
문장손은 무릎을 꿇은 채로 한참을 울었다.
최서방이 왔다.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서 있었다.
그것이 최서방의 방식이었다. 말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이 땅에서 배운 첫 번째 위로였다.
한참 후 문장손이 일어섰다.
눈물을 닦았다.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났습니다."
최서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두 사람이 싹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가는 싹이 연해주의 봄 햇살 안에서 서 있었다.
단천에서 온 씨앗이 연해주의 흙에서 처음으로 싹을 틔운 것이었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첫 번째 수확이었다.
쌀이 아니었다. 아직 싹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수확이었다. 이 땅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의 첫 번째 증거였다. 이 흙이 자신의 씨앗을 받아들였다는 것의 첫 번째 신호였다.
문장손은 그 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머니.
자랐습니다.
두만강을 건너온 씨앗이 자랐습니다.

안산, 1996년 봄.
드미트리는 창가의 화분을 보다가 나디아에게 말했다.
"나디아 씨, 증조할아버지가 연해주에서 처음 싹이 올라왔을 때 울었대요."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아요?"
"아버지가 말해줬어요.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래요. 그 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고요."
나디아가 화분의 싹을 바라보았다.
"저도 이 싹 처음 봤을 때 울 뻔했어요."
"그랬어요?"
"네. 드미트리 씨는요?"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했다.
울 뻔한 것이 아니었다. 울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저도요."
나디아가 웃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다 말이 없다고 했잖아요. 아버지 편지에서."
드미트리가 웃었다.
"맞아요."
두 사람이 웃었다.
창가의 두 화분이 봄 햇살 안에서 빛났다.
단천에서 출발한 씨앗이 연해주에서 자랐다. 카자흐스탄에서 자랐다. 안산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제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었다.
씨앗은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카레이스키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이 민족의 방식이었다.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서든 자라는 것이었다.
어디서든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다음 회에서는 1903년 연해주 여름, 문장손의 볍씨가 황금빛 벼로 익어가는 이야기와, 신한촌 사람들이 그 수확 앞에서 나누었던 밤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안산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드디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날 아침이 시작됩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연해주 고려인 볍씨 농사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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