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26회]돌밭과 모닥불, 1902년 연해주 신한촌

by Zorbamoon 2026. 9. 5.
반응형

 

[카레이스키 유랑사 026회]
돌밭과 모닥불, 1902년 연해주 신한촌

바이라인: 조르바문


"카레이스키 유랑사 026회 돌밭과 모닥불 1902년 연해주 신한촌 문장손 카레이스키"


손바닥이 말을 한다.

말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다.

물집이 잡히면 이만큼 버텼다고 말한다.

물집이 터지면 조금 더 가야 한다고 말한다.

굳은살이 생기면 이제 여기가 내 땅이라고 말한다.

문장손의 손바닥이 그 말들을 하기 시작한 것은 신한촌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최서방이 내준 땅에 처음 삽을 들이밀던 그날이었다. 쇠 삽날이 돌에 부딪혀 튕겨나왔다. 손이 저렸다. 그러나 다시 들었다. 또 튕겨났다. 그래도 다시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 붉은 살이 드러났다. 그 위에 다시 물집이 잡혔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의 시작이었다.

말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쓴 첫 번째 페이지였다.



1902년 5월, 연해주 신한촌.

최서방이 내준 땅은 마을 북쪽 끝자락이었다.

처음 그 땅을 보았을 때 문장손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돌이 너무 많았다. 흙보다 돌이 많았다. 이런 땅에서 뭔가가 자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최서방이 이 땅을 내주었다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 이유를 믿기로 했다.

삽을 들었다.

첫 번째 삽질에 삽날이 튕겼다.

손이 저렸다. 손가락이 얼얼했다. 그러나 다시 들었다. 두 번째도 튕겼다. 세 번째에는 조금 파였다. 흙 아래 돌이 있었다. 손으로 집어냈다. 주먹만 한 돌이었다. 옆으로 던졌다. 다시 삽을 들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팠다.

점심이 없었다. 먹을 것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단천이 생각났다. 사립문 소리가 생각났다. 생각이 나면 발이 묶였다. 그러니 생각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삽을 들었다.

돌을 집어냈다.

또 들었다.

또 집어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판 것을 보았다. 작은 구덩이 하나였다. 이 땅을 다 일구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알지 않기로 했다. 오늘 이만큼 팠으면 된 것이었다. 내일 또 이만큼 파면 된 것이었다.

최서방이 왔다.

파낸 돌 더미를 보았다. 판 땅을 보았다. 그리고 문장손을 보았다.

"손 봐봐."

문장손이 손을 내밀었다.

물집이 잡혀 있었다. 몇 군데는 이미 터져 있었다. 최서방이 그 손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돌아갔다. 잠시 후 천 조각을 들고 왔다.

"감아."

문장손이 천 조각으로 손바닥을 감았다. 최서방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도 해야 해."

"압니다."

"모레도 해야 해."

"압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야."

문장손이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끝낼 겁니다."

최서방이 문장손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안산, 1995년 늦가을.

드미트리는 공장에서 기계를 고치다가 손을 다쳤다.

기계 부품을 조이는데 렌치가 미끄러졌다. 손등이 기계에 부딪혔다. 피가 났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쓸렸다. 작업복 소매로 닦았다. 계속 일했다.

퇴근하고 나서야 들여다보았다.

손등이 긁혀 있었다. 벌겋게 부어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것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의 손바닥이 이랬을 것이었다.

연해주 돌밭에서 삽을 들던 날.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다시 굳어가던 그 손바닥이. 할아버지의 손바닥도 그랬을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도랑을 파던 날. 아버지의 손바닥도 그랬을 것이었다. 콜호스에서 트랙터를 만지던 날.

그리고 지금 자신의 손등이 그랬다.

다친 정도가 달랐다. 상황이 달랐다. 그러나 다치면서 일한다는 것은 같았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같았다.

드미트리는 손등에 약을 바르면서 생각했다.

이 손이 카레이스키의 손이었다. 돌밭을 파고, 황무지를 일구고, 기계를 만지고,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는 손이었다.

나디아가 보건실에서 약을 가져왔다.

"많이 다쳤어요?"

"아니요. 별거 아니에요."

나디아가 드미트리의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약을 발라주었다. 말없이 발라주었다.

드미트리는 그 손길을 느끼며 생각했다.

최서방이 문장손의 손바닥에 천 조각을 건네주던 그 장면이 생각났다. 말없이 건네주던 그 장면이.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이 이것이었다.

말없이 약을 발라주는 것.

말없이 천 조각을 건네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것이기도 했다.



[이미지 삽입 — 본문 이미지 1]

="1902년 연해주 신한촌 돌밭에서 삽을 들고 혼자 일하는 문장손 손바닥에 천을 감고 최서방이 지켜보는 카레이스키"




그날 밤 모닥불이 피워졌다.

신한촌 한가운데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삼십 명이 넘게 모였다. 함경도 사람, 평안도 사람, 황해도 사람. 저마다 사투리가 달랐다. 생김새가 달랐다. 단천에서 온 사람, 북청에서 온 사람,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사람. 그러나 모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온 기억이었다.

모닥불이 타올랐다. 불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굵고 거친 얼굴들이었다. 오랜 바람과 햇볕의 흔적이 새겨진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모닥불 앞에서는 달랐다. 그 굵고 거친 얼굴들이 불빛 안에서 조금 부드러워졌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향 이야기였다.

평안도 어느 마을에서 온 사람이었다. 고향에 감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가을이 되면 감이 빨갛게 익었다고 했다. 그 감을 따서 처마 밑에 매달면 곶감이 되었다고 했다. 겨울에 그 곶감을 먹는 것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말하다가 멈추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닥불 앞에 앉은 사람들이 다 알았다. 그 뒷말이 무엇인지를. 이제 그 감나무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그 곶감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불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잠시 후 누군가 노래를 불렀다.

함경도 민요였다. 낮고 가늘게 불렀다. 크게 부르지 않았다. 마치 혼자 부르는 것처럼, 그러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불렀다.

문장손은 그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단천에서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와 닮아 있었다. 멜로디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이 같았다. 그리움이 같았다. 떠나온 것에 대한 마음이 같았다.

문장손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았다.

오늘 이미 충분히 울었다. 신한촌 어귀에서 조선말 소리에 울었다. 고추나무 앞에서 울었다. 최서방이 내준 밥 앞에서 울 뻔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불을 바라보는데 노래가 계속되었다.

한 사람이 부르다가 다른 사람이 이어받았다. 다른 노래였다. 평안도 노래였다. 그것도 낮고 가늘었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모닥불을 가득 채웠다.

문장손은 그 노래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이었다. 각자 다른 날에 건넜다. 각자 다른 이유로 건넜다. 그러나 건너온 것은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모닥불 앞에 모였다.

이것이 신한촌이었다.

조선에서는 한 번도 한자리에 모인 적 없는 사람들이, 연해주라는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이웃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 슬프기도 하고 이상하게 따뜻하기도 했다.

잃어버렸기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빼앗겼기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모임이 따뜻했다.

카레이스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실에서 시작되었지만 온기로 이어졌다.



안산, 1995년 늦가을 밤.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에서 나온 드미트리와 나디아는 골목 벤치에 앉았다.

차가운 밤이었다. 벤치가 차가웠다. 그러나 일어서기 싫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골목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려인 아주머니들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골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아어였다. 웃음소리가 났다. 골목에 웃음소리가 채워졌다.

드미트리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증조할아버지가 신한촌에서 처음 모닥불 앞에 앉으셨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나디아가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어떤 기분이요?"

"낯선 땅인데 외롭지 않은 기분이요. 잃어버렸는데 따뜻한 기분이요."

나디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 알아요 그 기분."

"언제요?"

"여기 처음 왔을 때요. 안산에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말도 잘 몰랐고. 그런데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에 들어갔더니 된장국 냄새가 났어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울 것 같았어요."

드미트리가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울었어요?"

"울 뻔했어요. 참았어요."

드미트리가 웃었다.

"저도 그랬어요. 거기서 처음 된장국 먹을 때."

나디아도 웃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웃었다.

골목에 웃음소리가 더해졌다. 고려인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와 드미트리와 나디아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안산의 골목이 그 소리들로 잠깐 따뜻해졌다.

드미트리는 그 따뜻함을 느끼며 생각했다.

1902년 연해주 신한촌의 모닥불과 1995년 안산의 이 골목이 다르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따뜻해지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

9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도 그것은 같았다.

카레이스키는 언제나 그렇게 온기를 만들었다.

상실에서 온기를. 그리움에서 따뜻함을.

그것이 이 민족의 방식이었다.



"1995년 늦가을 안산 골목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는 드미트리와 나디아 뒤로 고려인 아주머니들 카레이스키 온기"




다음 회에서는 1902년 연해주 신한촌, 문장손이 처음으로 최서방에게 군자금 이야기를 듣던 그 밤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독립운동의 불씨가 신한촌 안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었는지, 그리고 문장손이 그 불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깊이 파고듭니다. 안산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의 겨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연해주 신한촌 정착 및 고려인 이주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Flow Creation

 

labs.googl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