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

[카레이스키 유랑사 022회]아버지의 답장, 1995년 여름

by Zorbamoon 2026. 8. 23.
반응형

[카레이스키 유랑사 022회]
아버지의 답장, 1995년 여름

바이라인: 조르바문


썸네일 프롬프트 (영어 / 16:9)
Yellow background, bold red Korean text "카레이스키 유랑사 022회" in the center, white Korean subtitle text below "아버지의 답장 1995년 여름", background shows realistic documentary-style photo of a worn letter envelope on a wooden desk with summer afternoon light streaming through a small window, sepia tone, 16:9 ratio
alt="카레이스키 유랑사 022회 아버지의 답장 1995년 여름 고려인 드미트리 카레이스키"


-


답장을 기다리는 것은 씨앗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언제 올지 모른다. 올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기다린다. 매일 아침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것이 버릇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실망하고, 그래도 내일 또 들여다본다. 씨앗을 심고 매일 아침 화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아도 내일 또 들여다보는 것처럼.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없어도 내일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문드미트리가 아버지 빅토르의 답장을 기다린 것이 꼭 그랬다.



봄 편지를 부친 것은 1995년 4월이었다.

나디아와 조선말로 이야기를 나눈 그 이튿날이었다. 볍씨가 자라고 있다고 썼다. 나디아를 만났다고 썼다. 같이 살아남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고 썼다. 그 편지를 우체국에 가져갔다. 카자흐스탄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직원이 두세 주는 걸린다고 했다.

그러면 답장은 한 달 반이면 올 수 있었다.

드미트리는 6월 초부터 매일 아침 우편함을 보았다.

없었다. 없었다. 없었다. 6월이 지나갔다. 7월이 왔다. 더워졌다. 안산의 여름은 카자흐스탄의 여름과 달리 습했다. 공장 안이 찜통이었다. 작업복이 땀으로 젖었다. 퇴근하면 온몸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도 매일 우편함을 보았다.

7월 중순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우편함을 열었다. 봉투가 있었다. 카자흐스탄 소인이었다. 아버지의 글씨였다.

드미트리는 봉투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계단 앞이었다. 올라가야 했다. 방에 가서 읽어야 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봉투를 들고 그냥 서 있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방으로 올라갔다.

불을 켰다.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있었다. 드미트리의 것과 나디아의 것이. 여름이라 싹이 많이 자라 있었다. 초록빛이 짙었다. 드미트리는 그것을 잠깐 바라보다가 침대에 앉았다.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가 세 장이었다. 지난번보다 한 장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할 말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드미트리는 첫 줄을 읽었다.

드미트리야.

편지 잘 받았다.

나디아 이야기 읽고 어머니가 우셨다.

드미트리는 그 문장에서 멈추었다. 어머니가 우셨다. 기쁜 눈물인지 슬픈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알 것 같았다. 기쁜 눈물이었을 것이었다. 아들이 낯선 땅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소식에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었다.

계속 읽었다.

드미트리야.

볍씨가 자란다니 다행이다.

그 씨앗이 어디서 온 것인지 너는 알고 있지. 증조할아버지가 단천에서 두만강을 건너며 가져온 씨앗이야.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심은 씨앗이야. 내가 네 손에 쥐여준 씨앗이야. 그 씨앗이 대한민국 안산의 창가에서 자라고 있다니, 이 아버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해.

나디아 씨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라고 했지. 할머니가 연해주에서 볍씨를 품에 안고 화물칸에 실렸다고 했지. 그러면 같은 사람이야. 어느 땅에 흩어졌든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의 후손이면 같은 사람이야.

한 가지만 물어볼게.

나디아 씨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

드미트리는 그 문장을 읽다가 웃음이 났다.

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늘 필요한 말만 했다. 볍씨 챙겨, 두려워도 발을 내딛으면 된다, 별 봐. 그런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디아를 처음 봤을 때 어땠냐고 물었다.

드미트리는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 안산 골목에서. 민들레 앞에 쭈그려 앉아 있던 그 모습을.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쳤을 때를. 왜 쳐다봐요, 라고 했던 그 목소리를.

민들레 같았다고 쓰면 될까. 아니면 그냥 낯설지 않았다고 쓰면 될까.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편지를 읽었다.



드미트리야.

네 증조할아버지가 신한촌 우물가에서 처음 네 증조할머니를 봤을 때, 할아버지가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할머니를 봤을 때, 내가 나탈리아 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 우리 집안 남자들은 다 말이 없었다고 한다.

말이 없는 것이 우리 집안 사랑 방식이라고 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어.

말이 없어도 알아챈다고. 카레이스키 여자들은 다 안다고.

나디아 씨도 알아챘을 거야.

드미트리는 그 문장을 읽으며 다시 웃음이 났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쓰다니. 말이 없는 것이 우리 집안 사랑 방식이라고. 드미트리는 창밖을 보았다. 안산의 여름 하늘이었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나디아가 알아챘을까. 드미트리가 민들레 앞에서 멈추었을 때부터 알아챘을까.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에서 자꾸 마주쳤을 때 알아챘을까. 아니면 조선말로 말하던 그날 처음 알아챈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좋다고 했다.

두 글자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편지를 계속 읽었다.


드미트리야.

한 가지만 더 말할게.

여기는 잘 있다. 어머니도 잘 있다. 논도 잘 있다. 올해 여름은 비가 많이 왔다. 덕분에 논에 물이 넉넉하다. 볍씨가 잘 자라고 있어.

네가 거기서 볍씨를 심었다고 했지.

창가에서 자라고 있다고 했지.

드미트리야.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두만강을 건너며 가져온 씨앗이 연해주에서 자랐어.

할아버지 문인수가 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심어 자랐어.

내가 이 카자흐스탄 논에서 이어받았어.

네가 대한민국 안산 창가에서 심었어.

씨앗은 어디서든 자란다.

우리도 어디서든 자란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야.

별은 여기서도 보인다.

아버지가.


드미트리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방 안이 조용했다. 안산의 여름 오후였다. 창밖에서 매미 소리가 들렸다. 카자흐스탄에는 매미가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때 이 소리가 뭔지 몰랐다. 갈리나 아주머니한테 물었더니 매미라고 했다. 한국의 여름 소리라고 했다.

지금은 익숙했다.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있었다. 여름 햇살을 받아 초록빛이 짙었다. 드미트리의 것과 나디아의 것이 나란히 있었다.

아버지가 썼다. 씨앗은 어디서든 자란다. 우리도 어디서든 자란다.

드미트리는 그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증조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넌 지 90년이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카레이스키는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랐다. 어디서든 자랐다. 아무도 심어주지 않아도 자랐다.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랐다.

그것이 카레이스키였다.




1995년 여름 안산 고시원 방에서 카자흐스탄 아버지의 답장을 읽는 고려인 드미트리 창가에 두 화분 카레이스키"




그날 저녁 나디아를 만났다.

갈리나 아주머니 식당 앞 골목이었다. 나디아가 먼저 와 있었다. 드미트리가 오는 것을 보고 눈을 들었다.

"얼굴이 달라요."

드미트리가 웃었다.

"아버지 답장이 왔어요."

나디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뭐라고 하셨어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두 사람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된장국을 들고 왔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내려놓고 돌아갔다.

드미트리가 편지를 꺼냈다.

나디아 앞에 내밀었다.

"읽어봐요."

나디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읽어도 돼요?"

"네. 나디아 씨 얘기도 있어요."

나디아가 편지를 받았다. 러시아어였다.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드미트리는 나디아가 편지를 읽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디아의 눈이 천천히 글씨 위를 움직였다. 읽다가 멈추었다. 다시 읽었다. 한 문장을 두 번 읽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우셨다는 부분에서 나디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이 없는 것이 우리 집안 사랑 방식이라는 부분에서 나디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 읽고 나서 나디아가 편지를 내려놓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좋은 아버지예요."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제 뵐 수 있을까요."

드미트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디아가 아버지를 뵙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미트리는 알았다. 함께 가겠다는 말이었다. 카자흐스탄에 함께 가겠다는 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함께 서겠다는 말이었다.

"돈을 모아야 해요. 비행기 삯이 비싸니까요."

"같이 모으면 되죠."

드미트리는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같이 모으면 되죠. 그 말이 간단했다. 그러나 그 간단한 말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같이. 함께. 나란히. 두 씨앗이 같은 창가에서 자라듯.

"그렇게 하죠."

드미트리가 말했다.

두 사람이 된장국을 먹었다. 뜨거웠다. 여름인데도 뜨거운 된장국이 좋았다. 갈리나 아주머니가 두부를 더 넣어주었다. 아무 말 없이 넣어주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뚝배기 안에 함께 끓고 있었다.



며칠 후 드미트리는 답장을 썼다.


아버지.

답장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우셨다는 말에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나디아 씨가 편지를 읽었습니다. 보여줘도 되겠냐고 먼저 물었고, 나디아 씨가 괜찮다고 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아버지를 언제 뵐 수 있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같이 돈을 모아서 카자흐스탄에 가겠습니다. 나디아 씨와 같이 가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같이 서겠습니다.

화분의 볍씨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두 개가 나란히 잘 자라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올림.


편지를 접었다. 봉투에 넣었다. 창가를 보았다. 두 화분이 여름 햇살 안에서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드미트리의 것과 나디아의 것이 나란히.

저 씨앗들이 대한민국의 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카레이스키의 씨앗이 드디어 조상들의 땅에서 자라고 있었다.

1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자라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1995년 여름 안산 갈리나 식당에서 카자흐스탄 아버지의 편지를 함께 읽는 드미트리와 강나디아 카레이스키"



다음 회에서는 드미트리와 나디아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떠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이야기, 그리고 안산 공단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는 두 사람의 가을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1990년대 고려인 한국 정착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