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스키 유랑사 001회] 낡은 액정 속의 눈망울, 120년의 유랑을 부르다
바이라인: 조르바문'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옥탑방의 두꺼운 철문이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무겁게 닫힌다. 쿵 하는 그 짧고 무거운 소리는 오늘 하루 동안 거대한 빌딩 숲의 사각지대에서 남들이 버린 오물과 묵은 때를 쓸어내며 버텨내야 했던 비정한 노동의 시간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하는 차단막과 같다. 문을 열고 방 한가운데로 발을 내딛자마자, 낮새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졌던 함석지붕의 눅눅하고 더운 열기가 시멘트 벽면에서 배어 나오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뒤섞여 훅 하고 가슴을 친다. 창문 하나 제대로 열어놓지 못해 환기조차 되지 않는 이 세 평 남짓한 방 가득 고인 공기는 숨을 턱 막히게 하지만, 서울의 화려한 빌딩 숲 뒤안길에서 빗자루 하나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낸 67세 청소노동자의 지친 육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유일한 성채(城砦)이자 마지막 보루다.
허리와 어깨,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큰거리던 무릎 마디마디마다 끈적하게 고인 피로가 마치 시멘트 반죽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작업복을 털어낼 기력조차 없어 침대 모서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칠고 깊은 숨을 몇 번이고 몰아쉬며, 늘 버릇처럼 하던 대로 바지 주머니에서 오래되어 여기저기 액정이 긁힌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낮 동안 빌딩 바닥을 닦아내던 독한 세제 냄새가 차마 가시지 않은 투박하고 거친 손가락으로 액정 화면 위에 뽀얗게 앉은 밤의 먼지를 쓱 닦아낸다.
화면의 파르스름하고 차가운 불빛이 불 꺼진 어두운 방안을 쓸쓸하게 비추고, 알림창을 무심히 내리다 문득 손가락이 얼어붙은 채 멈추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한 구석, 오래전 대화가 툭 끊겨 세월의 먼지가 뽀얗게 앉은 대화방 위에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세련된 닉네임이나 화려한 미사여구 대신, 오직 '김이리나러시아'라는 투박하고도 서글픈 일곱 글자가 적혀 있다.
십 몇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그 이름. SNS의 가상의 바다를 유랑하다 운명처럼 마주쳤던 여인, 러시아 니호카의 척박한 땅에 살던 고려인 김이리나 여사다. 불 꺼진 방안에서 사진 속 그녀의 깊은 눈망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깊고 짙은 갈색의 음영, 그 저변에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서글픔과 시린 한(恨)이 맺혀 있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고독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모진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받아치고, 스탈린의 서슬 퍼런 강제이주 명령서 한 장에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붉은 황무지로 던져졌던 우리 핏줄, 카레이스키들의 120년 유랑의 잔혹사가 고스란히 고여 있는 눈동자였다.
그녀는 꿈에 그리던 조상들의 땅 대한민국에 들어와 살기 위해 지독하게도 일했었다. 안산의 거친 공단 구석, 기계 소음과 매캐한 기름내가 가득한 지하 작업장에서 밤낮을 잊은 채 손이 부르트도록 땀을 흘렸다. 하지만 이 냉혹한 조국은 핏줄을 찾아온 동포에게 따뜻한 둥지가 되어주지 못했다. 차가운 비자 제도는 그녀의 절박한 정착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강제 추방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밀어냈다. 과거 행정사 사무실을 운영하며 고려인들의 체류 문제를 직접 취급해 보았던 나였기에, 그녀가 겪었을 법의 사각지대와 그 눈물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누구보다 잘 안다.
세월이 흘러 그녀의 아들 신 바딤(Sin Vadim)이 어머니의 못다 한 꿈을 안고 이 땅을 다시 밟았다. 안산의 공단에서 그 아들과 마주쳤을 때, 어머니의 선하고 서글픈 눈매를 꼭 빼닮은 그 젊은 고려인 사내의 눈에서 나는 꺾이지 않는 카레이스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하지만 당장 내 한 몸 누일 월셋방을 전전하는 처지는 그들과 더 깊이 동행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인연은 그렇게 세월에 깎여 희미해졌다. 그러나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대못처럼 박힌 미안함과 고려인들을 향한 불씨는 단 한 순간도 꺼진 적이 없다.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궤도에 남은 일념은 하나다. 내가 청소 일을 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게 된다면, 내 늙은 몸뚱이에 남은 마지막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 땅과 저 거친 유라시아 대륙을 떠돌며 피눈물을 흘린 카레이스키 동포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위해 쓰여야 마땅하다. 30년 동안 당뇨라는 몹쓸 놈을 몸에 얹고 악착같이 버텨왔지만, 내 육신의 힘이 다해갈지언정 내 안의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만큼은 그 어떤 가난도 가둘 수 없다.
이 소설은 사사로운 개인사를 눈물로 자위하기 위한 얄팍한 글이 아니다. 이것은 한민족의 가장 뜨겁고 강인한 저력을 대륙 위에 증명해 보였으나 정작 조국에게는 철저히 외면받았던, 카레이스키들을 향해 바치는 67세 청소노동자의 거칠고 묵직한 헌사(獻辭)이자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막 출사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김이리나 여사의 그 깊은 눈망울에서 시작된 핏줄의 기억은 낡은 스마트폰 액정을 깨고 120년 전 두만강의 푸른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1900년대 초반, 함경도 어느 산골. 동이 채 트기도 전의 시각이다.
두만강은 그날 새벽에도 검고 차갑게 흘렀다. 강 건너편,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연해주의 지평선 위로 희뿌연 새벽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강변의 갈대밭에 몸을 낮춘 한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문장손(文長孫). 1880년대생, 이제 스물 몇 해를 산 젊은 피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이미 늙은 산하(山河)를 닮아 있었다. 등에는 수십 년 묵은 무명 보자기 하나, 그 안에는 볍씨 한 줌과 어머니가 건네준 놋쇠 숟가락 하나뿐이었다.
뒤에는 탐관오리의 수탈로 빈털터리가 된 고향 땅, 앞에는 알 수 없는 이국의 벌판. 그는 떨리는 발을 강물 속으로 내딛었다. 차디찬 두만강의 물이 복사뼈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 문장손은 이를 악물었다. 이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아서 굶어 죽느니, 건너가서 새 땅을 일구겠다는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조선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카레이스키의 120년 유랑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1,000회를 향한 대장정의 첫 발걸음이 지금 이 두만강 새벽 강물 위에서 내디뎌졌다.
※ 이 소설은 실화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팩션(Faction)입니다. 고려인(카레이스키)의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재외동포재단 공식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자유의 영혼 조르바문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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