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옥탑방 시멘트마당에서 쓰는 카레이스키20 [카레이스키 유랑사 015회]구름 아래 카자흐스탄, 구름 위 대한민국 1992년 [카레이스키 유랑사 015회]구름 아래 카자흐스탄, 구름 위 대한민국 1992년바이라인: 조르바문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땅이 작아진다.산도 작아지고 강도 작아지고 도시도 작아진다.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작아진 땅 위에서 사람들은 평생을 싸우고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증조할아버지 문장손이 평생을 일군 연해주의 논도, 할아버지 문인수가 맨손으로 파낸 카자흐스탄의 도랑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손톱만 한 크기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손톱만 한 땅 위에서 카레이스키의 120년이 흘렀다. 문드미트리는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그 하늘 위로 올라가면서, 그것을 알았다. 땅은 작아지지만 그 땅 위에서 살아낸 것들은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을.알마티 공항은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드미트리는 마을에서 .. 2026. 6. 21. [카레이스키 유랑사 014회]아버지의 마지막 아침, 1992년 봄 [카레이스키 유랑사 014회]아버지의 마지막 아침, 1992년 봄바이라인: 조르바문 떠나는 것은 언제나 새벽이다.두만강을 건넌 것도 새벽이었다. 화물칸에 실린 것도 새벽이었다.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시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그 시간에 인생의 큰 일들은 일어난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새벽에는 붙잡아줄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얼굴도, 살아온 땅도, 심어놓은 볍씨도, 어둠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발이 앞으로 나간다. 만약 환한 낮이었다면,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면, 아무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드미트리가 카자흐스탄을 떠나던 날도 새벽이었다. 1992년 4월의 차갑고 어두운 새벽이었다.그 봄은 더디게 왔다. 카자흐스탄의 봄은 원래 더디지만, 1992년의 봄은 유난.. 2026. 6. 21. [카레이스키 유랑사 013회]소련의 마지막 겨울, 1991년 12월 [카레이스키 유랑사 013회]소련의 마지막 겨울, 1991년 12월바이라인: 조르바문제국이 무너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조용하다.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댐이 무너질 때 처음에는 실금이 가고, 그 실금으로 물이 새고, 새는 물이 점점 굵어지다가 어느 순간 그냥 무너진다. 소련이 그랬다.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사임을 선언했다. 크렘린 궁 위에서 소련 국기가 내려갔다. 러시아 국기가 올라갔다. 70년을 버텨온 제국이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마을에서, 문드미트리는 그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다. 그해 12월은 유난히 추웠다.카자흐스탄의 겨울은 매년 혹독했지만 1991년 12월은 달랐다. 바람이 더 거.. 2026. 6. 20. [카레이스키 유랑사 012회]대한민국에서 온 사람, 1991년 알마티 [카레이스키 유랑사 012회]대한민국에서 온 사람, 1991년 알마티바이라인: 조르바문 사람은 책에서 배운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지도에서 본 나라를 안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에서 본 도시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림이다. 그림과 실물은 다르다. 냄새가 다르고 온도가 다르고 숨결이 다르다. 문드미트리가 대한민국을 처음 안 것은 텔레비전 화면에서가 아니었다. 알마티의 어느 시장 골목에서, 낯선 말투로 러시아어를 더듬거리는 한 사내를 만나던 그 순간이었다. 그 사내의 숨결에서 대한민국 냄새가 났다. 그리고 드미트리는 그것이 자신의 뿌리 냄새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1991년 봄이었다.소련은 아직 공식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미 소련이 아니었다. 발트 3국이 독립을 선언했.. 2026. 6. 19. [카레이스키 유랑사 011회]소련이 흔들리다, 드미트리의 청춘 1980년대 [카레이스키 유랑사 011회]소련이 흔들리다, 드미트리의 청춘 1980년대바이라인: 조르바문제국은 영원하지 않다.로마가 그랬고, 몽골이 그랬고, 대영제국이 그랬다. 그리고 소련도 그랬다. 70년을 버텨온 거대한 제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균열은 소리 없이 시작된다. 댐이 무너지기 전에 실금이 먼저 가듯, 소련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곳곳에서 균열이 보였다. 그러나 그 균열을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청년 문드미트리는 그 균열을 보았다. 아니, 느꼈다.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1985년 카자흐스탄이었다.문드미트리는 열여섯 살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두 번째 세대였다. 할아버지 문인수는 드미트리가 열 살 .. 2026. 6. 19. [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카레이스키 유랑사 010회] 소련의 아들, 조선의 핏줄 1960년대 바이라인: 조르바문 잊혀지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잊혀지는 것은 시간이 만든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흐려진다. 어제의 일이 일주일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일 년이 지나면 윤곽만 남고, 십 년이 지나면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사람의 탓이 아니다. 시간의 탓이다. 그러나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잃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의식적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시간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버리는 것이다. 문빅토르는 잊혀지는 것과 싸웠다. 그러나 잃어버리지는 않았다.소련 학교에서 러시아어로 레닌을 배우고 마르크스를 배우는 동안, 집에서는 아버지 문인수가 조선말로 .. 2026. 6. 10.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